기자명 김규리 기자 (kimguri21@skkuw.com)

신문사를 시작하던 첫 학기, 준정기자였던 작년의 나는 문화부 기사를 위해 웹소설을 소재로 기획을 짰다. 그 기사를 위해 8명을 인터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게임 판타지 웹소
설이라는 작은 소재를 잡고 교수님과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제 막 기사를 쓰기 시작했던 처지에서 교수님과의 대면 인터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이것저것 두서없이 펼쳐 들었다. 질문지의 목록에는 게임 판타지 웹소설이 어떻게 독자의 욕망을 겨냥하느냐는 문항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사전에 조사했던 배경지식을 전문가에게 확인받길 바랐다. 이를테면 ‘88만 원 세대’와 같은 청년층의 소득이 문화 소비에 영향을 미쳤다든가 하는 내용을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교수님은 독자의 욕망론에 대해서 IMF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이 특정한 사건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설명해내려 하는 데에 회의적이라는 입장이셨다. 그것은 인문학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경험은 따로 기록해둔 일 없는데도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역사학자 아를레트 파르주의 『아카이브 취향』은 18세기의 형사사건 자료를 정리·해석하는 태도를 소재로 한다. 당대의 아카이브를 대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책이다. 작가는 아카이브가 서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탓에 역설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역사학자는 아카이브를 통해 목소리를 발굴해낸다. 이를 통해 찾을수 있는 것은 보편적이고 결정적인 ‘진실’이 아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은 방식으로 확인하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신문사를 떠나는 시점에 읽은 이 책은 기사라는 대상 자체를 톺아보게 해준다. “아무리 꼼꼼하더라도 분석되지 않는 차원, 이름 붙일 수 없는 차원, 객관적 연구로 다뤄질 수 없는 차원은 남게 마련이다”나 “보편적 진실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명령과 그럼에도 진실함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명령 사이에 난 길은 좁은 길일 때가 많다”와 같은 책 속의 구절은 어딘가 눈길을 끈다. 저 구절에는 작년의 내가 교수님과의 인터뷰에서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때의 나는 어느 한 가지 확정적인 요인이 현상을 단번에 설명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명확하고 깔끔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현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일종의 포만감마저 안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 나간 기사문에서 내가 원래 의도했던 부분은 공백으로 됐다. 기사 이전의 기획 문건을 쓰고 검토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공백이다.

『아카이브 취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팩트 중심주의를 온화하게 비판하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즉효가 있는 정보로 진실을 판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 존재하는 일을 의미하는 팩트는 그러한 기대를 담고 있다. 과거의 기록 자체가 진실을 보장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사건의 파편이 파악되어야만 비로소 희미한 일면이나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김규리 차장kimguri21@skkuw.com
김규리 차장
kimguri21@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