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옥하늘 기자 (sandra0129@skkuw.com)

개인을 넘어 사회를 반영하는 향
"향수는 제 인생의 동반자 같아요"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다른 감각보다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후각이라고 한다. 실제로 개인 맞춤형 향수를 직접 만드는 향수 공방이 유행하는 등 최근 향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향테리어’라고 불리는 홈 프래그런스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 없어서 오히려 더 그 매력이 무궁무진하다는 향. 
국내 1세대 조향사이자 우리나라에 첫 조향 교육기관을 만들어 지금까지 많은 후학을 양성해오고 있는 정미순 조향사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1세대 조향사라고 불린다. 조향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조향사 일을 시작으로 미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에스티 로더 여사가 저의 롤모델이에요. 고등학교 시절 이분의 전기를 읽고 조향 분야에 매료돼 조향사의 꿈을 꾸게 됐어요. 화학과로 대학 진학을 한 것도 에스티 로더 여사처럼 화학을 공부해 향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지금의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이수화학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조향 공부를 하러 가서 3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어요. 일본 유학 이후 1년 정도 수입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하다 작은 아로마테라피 센터를 시작으로 독립을 하게 됐어요. 

지금의 지엔 퍼퓸&플레이버 스쿨은 어떻게 운영하게 됐나.
처음은 갈리마드 퍼퓸 스튜디오로 시작했어요. 2002년 봄, 유럽의 화장품 박람회를 보고 프랑스의 유명 향료 산지인 그라스를 방문하면서 저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죠. 대중을 위한 맞춤 향수의 시초인 갈리마드의 대표와 만나게 됐어요. 그때 한국에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오픈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상업성에 대한 걱정에 바로 승낙하지 못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갈리마드 대표로부터 '아직 고민하고 있는 중이냐'는 내용의 메일이 도착했어요. 이후 저는 프랑스로 건너가 갈리마드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고, 역삼동에서 한국 최초로 향수 공방을 오픈함과 동시에 국내 첫 조향 교육기관을 만들었죠. 갈리마드와 계약이 끝난 2012년 지금의 지엔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어요.
 

향수 전문 잡지를 발행했다고 들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나.
향수 전문 잡지 씨센트(Cscent)는 2011년에 처음 1호를 발행하고 2018년 10호까지 발행했어요. 각 호마다 빈티지나 여행 등 하나의 테마를 정해 향과 연결한 콘텐츠를 꾸몄어요. 향과 향료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나 조향사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최근 업계 동향과 새로운 향수 소개를 하기도 했어요.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대중적인 잡지가 아니라서 자비로 발행하다 보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조향 교육을 받고 회사에 입사하면 무슨 일을 하는가.
오랜 기간 조향 교육을 해오면서 거쳐 간 제자를 모두 셀 수는 없겠지만, 대략 천 명이 넘는 제자를 양성해온 것 같아요. 가장 많이 가는 곳은 화장품 회사예요. 화장품 회사에서의 향기 관련 직무는 △어플리케이터(Applicator) △이벨류에이터(Evaluator) △퍼퓨머(Perfumer)로 나눌 수 있어요. 어떤 향을 제품에 어떻게 입힐지 고민하고 제품에 적용하는 사람이 어플리케이터고, 이렇게 제품에 입힌 향에 관해 설명하고 평가하는 사람을 이벨류에이터라고 해요.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향을 직접 배합해서 새로운 향료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퍼퓨머, 우리가 흔히 부르는 조향사라고 해요. 향수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대부분 그 회사에서 제품 기획을 하는 마케터가 주로 하고 있어요.

조향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건강한 후각과 뛰어난 감각은 조향사가 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힘든 조향 작업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조향사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거쳐 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 조향 작업도 단시간에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향을 만들 때 많게는 100번이 넘는 실험을 거치기도 하죠. 향 배합을 하다 보면 같은 종류에서 비율만 바꾸는 경우도 있고 완전히 새롭게 배합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이를 매일 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의 인내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향에 필요한 지식과 준비는 무엇인가. 
향료들은 전부 화학 물질이에요. 그래서 화학을 전공하며 배운 지식들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향료들이 가지고 있는 화학적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각 향료를 가지고 조향을 할 때 그 내용을 고려해서 향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취업을 할 때 화장품 회사에서 보는 스펙 중 하나가 화학과인 경우도 있어요. 이에 더해 내가 만들고자 하는 향이 어떤 향인지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해요. 조향을 하는 과정은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색을 섞어서 도화지에 칠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색, 즉 향을 낼 수 있는 재료를 찾아서 섞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가 만들 향의 콘셉트와 느낌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그 그림 안에 채워 넣을 재료들을 향의 팔레트 속에서 뽑아서 쓰기 때문에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향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근 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이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삶이 여유로워진 면도 있고 오히려 팍팍해진 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향이 채워줄 수 있다는 증표라고 느껴져요. 향을 통해 자신에게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의미죠. 사람들은 향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도 해요. 누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본능적인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게 향이에요. 한 사람이 어떤 향을 맡고 그에 끌리는 것은 다른 요인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그 향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향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특성, 성격 등이 드러나요. 향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향수를 쓰면서 본래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나한테 맞는 향수를 찾아가는 향수 공방의 인기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환경이 향 선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가.
물론이에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향이 할 수 있죠. 패션 트렌드도 그렇지만 향에도 트렌드가 있어요.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행했던 향은 그린 계열의 향이었어요.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감정이 반영된 것이죠. 경기가 호황일 때와 불황일 때에도 다른 향이 유행해요. 90년대 불황에는 마린 계열이 유행했었고, 그 이후 2000년대에 와서는 달콤한 프루티 계열이 유행했어요. 그 사회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향에 반영되는 것이죠. 지금 같은 힘든 시기에도 유행하는 향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에요. 향은 감정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죠.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면 여성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여성적인 향보다는 약간 중성적인 향을 선호하게 돼요. 이렇게 대중들이 선호하고 시대가 원하는 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면 향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어요.

국내 조향 산업의 전망은.
향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사람들의 삶에 향이 더 가까이 스며들고 있어요. 향수와 디퓨저, 향초의 인기가 이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해요. 향 시장 자체가 많이 확장돼왔고, 앞으로도 이 시장이 더 커지면서 조향사의 수요도 함께 올라갈 것 같아요. 지금은 대중적인 향이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사람들이 더 다양한 향을 많이 접하게 됨에 따라 대중이 향을 인지하고 고를 수 있는 수준도 올라갈 것이라고 봐요. 저 같은 경우에는 조향 산업이 발전한 계기가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던 조향 교육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지 교육이 우선돼야 하는 것 같아요.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 친구들이 사회에 하나둘 진출하면 그들을 중심으로 수준 높은 향 문화가 형성되고 관련 산업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교육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그 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시중에서 향수 고르거나 뿌릴 때의 팁이 있다면.
향수를 고를 때 첫 향의 느낌을 중요하게 보지만 향수를 바로 사지는 않아요. 향수를 뿌려보고 잔향까지 확인한 뒤 그 향이 주는 기운을 모두 느끼고 난 후 결정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향을 몸에 뿌려보는 착향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체온과도 관련이 있고, 신체의 어느 부위에 뿌리는가도 관계가 있어요. 또한 향수가 가진 향의 특징마다 뿌리는 방법이 다릅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머리 위 30cm, 45°각도에서 뿌리는 것이 좋아요. 향이 몸에 골고루 분산돼 몸 전체에서 향이 나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향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특별한 자리나 일이 없을 때는 향을 뿌리지 않아요. 향 테스트를 워낙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향이 있으면 방해가 돼요. 일할 때 향이 나는 것은 테스트로 착향을 하는 경우예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삶의 계획은.
목표한 것들은 많이 이룬 것 같아요. 꿈이었던 제주도 전원생활도 시작했죠. 앞으로는 그곳에서 정원을 꾸미며 살고 싶어요. 방배동에서 운영하던 뮤제 드 파팡이라는 박물관도 함께 이전했어요. 제주도에서 조향 일을 계속하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그들이 바른 조향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가려고 계획했던 외국을 방문하고 싶어요. 제가 유학했던 나라인 일본을 포함해 한 번 다녀왔던 인도도 꼭 다시 방문하고 싶어요. 향이 굉장히 많이 발달한 나라라서 향에 관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인도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고대 향료가 존재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럽에 비해 베일에 싸여있는 향수 제조의 메카 같은 곳이어서 굉장히 매력적인 나라예요. 같은 맥락에서 터키도 꼭 가보고 싶어요. 

조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향을 좋아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데 타의에 의해서 시작하거나 경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향과 함께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조향사가 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조향사의 일을 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어요. 이 힘든 과정을 모두 이겨낼 본인의 열정을 갖췄다면 준비는 다 된 것이니 두려워 말고 도전해도 좋아요.  

 

향수 전문 잡지 씨센트.
향수 전문 잡지 씨센트.
지엔 퍼퓸 입구에 놓여있는 향료들.
지엔 퍼퓸 입구에 놓여있는 향료들.
지엔 향수 공방의 입구.
지엔 향수 공방의 입구.
지엔 퍼퓸 입구에 다양한 향수와 유퀴즈에 출연했던 대표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지엔 퍼퓸 입구에 다양한 향수와 유퀴즈에 출연했던 대표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정미순 조향사의 모습.
정미순 조향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