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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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증은 의지박약이 아닌 뇌 질환의 일종

약물과 행위 의존증 모두 뇌과학적 원리 동일

흔히 ‘중독자’라고 불리는 의존증 환자는 사회로부터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회장 임태환)에서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 의존증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22%가 ‘성격과 의지력의 문제’, 20%가 ‘잘못된 습관의 문제’라고 응답했다. 의존증은 엄연한 정신질환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의존증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특징으로 이해한다. 의존증이 질병임을 밝히기 위해 그 속에 있는 뇌과학적 원리를 찾아본다.

‘중독’ 표현부터 바로 잡아야
의존증이란 자제력을 잃고 장기간 과량의 약물을 복용하거나 특정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의존증은 흔히 대중 사이에서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그러나 중독은 영어로 ‘intoxication’을 뜻하는 급성중독과 ‘addiction’을 뜻하는 만성중독으로 나뉜다. 급성중독은 일시적으로 술에 취하거나 독성물질에 중독됐을 때 쓰는 단어고, 흔히 알고 있는 중독은 의존증을 의미하는 만성중독이다. 만성중독을 중독이라고 표현하면 의미상 모호하기 때문에 ‘의존’이라는 단어로 바꿔 표현해야 바람직하다.


의존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
의존증은 어떤 수단에 의해 일어났느냐에 따라 약물 의존증과 행위 의존증으로 나뉜다. 둘은 진단 기준에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약물 의존증인지 판단하려면 금단증상과 내성의 유무를 따져야 한다. 금단증상이란 체내에 있는 약물의 농도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약물의 효과와 반대되는 생리적 반응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의 생리적 효과는 신경을 억제하는 것이므로 그 금단증상은 신경계가 억제를 벗어나 발생하는 △경련 △*섬망 △환각 등이 된다. 내성은 의존 대상으로부터 얻어지는 만족감이 점차 떨어지는 증상이다.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서정석 교수는 “금단증상과 내성은 뇌 신경계의 이상에 의한 것”이라며 “이는 의존증이 질환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행위 의존증은 약물 의존증과 같은 신체적인 금단증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회는 게임 의존증을 진단할 때 과민성이나 불안, 초조 등과 같은 심리적 금단증상을 주요 진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뇌가 의존의 늪으로 빠지는 과정
의존증은 뇌에 있는 ‘보상회로’가 자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통제를 벗어나며 발생한다. 보상회로란 우리 뇌에서 쾌락을 일으키는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전달되는 경로로, 우리 뇌에서 쾌락, 성취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부위다. 건강한 사람의 뇌에서 보상회로는 자제를 담당하는 전두엽과 합리적인 절충안을 도출하는 대상 피질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의존증이 심해지면 행동을 통제하는 영역이 자동적·습관적 행위를 담당하는 부위로 바뀌면서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서 교수는 “보상회로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해 전두엽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모든 종류의 의존증이 가진 공통 원리”임을 밝혔다.

의존증은 의존 대상으로부터 처음 만족감을 얻었을 때 뇌가 대상으로부터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학습하면서 시작된다. 학습된 행동이 반복되면 대상을 암시하는 이미지에 뇌가 반응하는 ‘갈망’이 발생한다. 서 교수는 “도박 의존증 환자가 포커 칩 이미지를 접했을 때 뇌를 촬영하면 일반인과 달리 보상회로가 크게 활성화된다”며 “이는 약물·행위 의존증 모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습된 행동이 반복되면 결과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자동으로 행위를 반복하는 ‘습관화’가 일어난다. W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승민 진료원장은 “습관화는 의존 대상을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축소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확대하는 인지 왜곡이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 원장은 “습관화와 갈망이 동시에 작용하면 의존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조건 자극이 느껴질 때마다 행위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이때 뇌는 행위 이후의 결과를 고려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의존증은 뇌를 점차 좀먹는다
의존증이 장기간 지속된 환자는 뇌 구조가 보통 사람과 크게 달라진다. 서 교수는 건강한 사람과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뇌를 비교하며 구조적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의 뇌와 달리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뇌는 전두엽과 측두엽 일부가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알코올성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점차 뇌 기능을 상실하다 이윽고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일은 행위 의존증에서도 나타난다. 행위 의존증이 생기면 뇌에서 정서적인 행동을 조절하고 주요 인지 기능을 통제하는 회백질의 부피가 축소된다. 그 이유에 관해 서 교수는 “도박 의존증 환자를 관찰하면 72시간 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의존증으로 인해 뇌가 휴식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아 뇌 기능이 빠르게 소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박 외에 스마트폰이나 SNS 의존증 등이 뇌에 일으키는 변화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서 교수는 “스마트폰 의존증이 주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관찰할 시간과 데이터가 아직 부족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의존증을 의지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서 교수는 의지력은 의존증을 극복하는 올바른 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서 교수는 의존증 환자를 향해 의지가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리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의지박약이라고 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이어 “뇌의 구조적 변화로 인한 자제력 상실을 의지력으로 극복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유 원장 역시 의존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의존증 환자를 뜻하는 ‘중독자’라는 표현에는 상당한 폄하와 혐오의 뉘앙스가 있다”며 “의존증을 진단받기 이전의 △사회경제적 수준 △성격 △학력 등 다양한 요인을 살펴봐도 의존증 예측 요인을 발견할 수 없다”고 의존증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가족 중에 의존증 환자가 있을 때 올바른 대처를 묻자 유 원장은 “의존 행동이 지속하는 것은 주변 가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 가족병으로도 불린다”며 “의존증을 깊이 공부하고, 환자에게 검사와 치료를 권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의존증에 걸리지 않았는지 의심될 때 대처도 중요하다. 유 원장은 “바로 병원을 찾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간단한 평가와 조언,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정신과에 다닌 기록은 법의 명령이나 본인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열람할 수 없다”며 “언젠가는 의존증에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이 없어져 자유롭게 정신과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뇌 촬영 사진. 오른쪽 환자의 뇌는 일반인보다 뇌가 위축된 것을 볼 수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뇌 촬영 사진. 오른쪽 환자의 뇌는 일반인보다 뇌가 위축된 것을 볼 수 있다.
ⓒ좋은아빠 운동본부

 

*섬망=주의력, 언어 능력 및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가 발생하는 현상. 알코올 의존 환자의 10~15%가 경험하며 적절한 치료가 없을 경우 15%의 치사율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