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다겸 기자 (dgflying05@skkuw.com)

중학교 시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한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더 많은 모래를 손에 쥐고 싶거든, 손에 힘을 빼야한다는 말이다. 토론대회에 들어가기 전 긴장한 나에게 즐기고 오라며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기 더 많은 모래를 쥐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이반 일리치 골로빈.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사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법을 공부하고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는 소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법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평탄하게 살아오던 중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름 모를 질병은 이반 일리치의 육체와 정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에 더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얻게 될 이익만을 노리는 이반 일리치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반 일리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은 거짓된 삶이었다는 사실을 죽기 직전에 깨닫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던 그의 삶은 결국 마지막에 와서 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삶이었다. 

이반 일리치도 이 점을 가장 고통스러워했다. 주위 사람들의 거짓된 동정과 위선은 그를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병들게 했다. 그는 헛된 인생을 산 것 같다며 그들과 자신에게 분노한다. 이반 일리치는 ‘올바른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해서 결국은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심지어 그는 이제는 ‘올바른 삶’에 집착하다 자신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러다 유일하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며 평안을 찾는 모습에서 이반 일리치는 대충이나마 그 답을 찾은 듯하다. 

책의 첫 장면에 묘사되는 부고 소식을 들은 동료들의 모습은 이반 일리치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을 귀찮은 일로 치부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안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남겼다. 그에게 남은 것이 행복했던 기억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아닌 그저 소모적인 물질들과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로 가득찬 삶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바쁘게 달려오다 마무리할 때가 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여유를 가지고 올 것을, 주위의 단풍 한 번 더 보고 사람들한테 따뜻한 한마디 더 해줄 걸…’하며 100m 달리기 하듯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순간을 후회하곤 한다. 바쁠 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정신없다는 이유로 도처에 깔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기 일쑤다. 마지막에 남는 건 행복했던 기억과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인데 말이다.

나도 요즘 갑작스럽게 여러 마지막을 마주하게 돼 그런지 그동안 신경써왔던 일들을 나름 무사히 마무리하게 돼 안도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복잡하다. 마지막이 돼서야 깨닫는 것들이 많아 아쉽다. 이제야 비로소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고 후회가 남는다. 

소위 말하는 좋은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선 사실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맹목적으로 결과만을 바라보고 오면 후회가 남기 마련인 듯하다. 너무 힘을 주면 결국엔 손 틈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유다겸 차장dgflying05@skkuw.com
유다겸 차장
dgflying0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