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언제부턴가 어떤 일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고 느낀다. 어릴 적 꿈꾸었던 여행작가, PD, 변호사 같은 장래희망이라던가, 미드 ‘글리’를 보고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던가… 꿈들을 어느새인가 잊고 ‘살아지는 대로 살자’같은 마인드를 가진 채 시간을 떠나보내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와는 사뭇 다른 대학 입시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갑자기 마주하며 심적으로 홍역을 앓았다. 그때 고등학교 내신이 바닥을 치고 난 뒤 기계적인 입시 공부에 집중한 뒤로는 어른이 된 지금도 어느 일이든지 가슴 뛰는 법이 없다. 아니 애초에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이라도 했던가?

물론 현재 코로나19의 상황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기 쉽지 않은 여건인 것도 맞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이유일 뿐 내 마음이 죽은 이유는 삶의 목표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게 크다. 고등학교 때는, 이 대학 입시만 끝나면 어느 정도 평지가 펼쳐져 있을 줄 알았다. 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그러나 대학에 오니 (물론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질병 사태가 터진 탓도 있지만) 학점이라는 오르막길이 있었다. 그뿐일까?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육아, 교육비 마련, 노후 대비… 앞에 놓인 끝없는 오르막길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을 물론 마냥 ‘짐’처럼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고되지만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얻어지는 삶의 행복들이 있고,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순간의 행복으로 평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르는 법이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가 아직도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는 것. 이리 깔짝거려 보다가, 또 저리 깔짝거려 보고. 목표 없이 좀비처럼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칸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노예’ 상태에 있다고 말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분명 지금 눈앞에 놓인 목표인 취업이라는 것은 사회인으로서 생존에 필요한 일일 터이다. 분명 어떠한 직업이나 분야를 설정하고 지금의 삶에 임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내가 관심 있는 한두 개의 분야를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갈 수도 있는 법이겠지. 그러면 지금 심층적으로 무언가를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하고 싶은 일도 없는 터였다. 그럼 우선 가슴 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글을 쓰며 다짐한다.

잠시 카페 창밖을 내다본다. 벌써 가을과 겨울 사이에 놓여있는 날씨다. 몇몇 사람들은 벌써 패딩을 꺼내 입고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날씨였다. 내가 중학교 시절 3주 정도 기회가 되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날씨가. 그때 절벽에서 번지점프를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섭기도 했고 주변 친구들의 괜한 눈치를 보다 결국 못했다. 정작 내 옆의 친구는 번지점프를 하고 돌아와 상쾌한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때 이후로 종종 그것을 떠올리며 후회하던 것을 떠올린다. 

번지. 번지점프라. 그래, 내일은 번지점프를 하러 가야겠다. 아래로 몸을 던지는 짜릿함 뒤에는 내 머리를 가득 채운 복잡한 생각과 피로함을 확 걷어내 버릴 수 있을까. 음, 글쎄.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혼자 가서 뭐 할까, 하고 나면 생각이 바뀔까 같은 이유로 그렇게 4년 넘게를 미뤄오던 것이다. 이렇게 양보하고 무르고 하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휘둘리며 산 거다. 그래. 내일은 번지점프를 해야지. 

황준하(인과계열 20)
황준하(인과계열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