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유림 기자 (yu00th@skkuw.com)

이번 학기 방중 첫 회의 날, 이제는 우리가 취재후기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제목부터 생각했다. 무슨 제목을 지을까 그리고 지금 지은 제목을 과연 쓰게 될까. 쓰게 됐다. 이번이 마지막 기사인데도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난 여전히 익숙해질수록 낯선 바다에서 파도를 탄다.

정기자가 됐으면 익숙해질 법한 일들은 없었고 온통 낯설었다. 그렇다고 준정기자 때처럼 설레는 것도 아니었다. 매번 처음 보는 파도가 밀려왔다. 배경지식을 찾는 일도, 텀 구성을 하는 것도, 인터뷰이 컨택하는 것도, 기사 첫 문장 쓰는 것도 다 해왔던 일이건만 새로운 파도를 타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가라앉았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잠수하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그러나 언제까지나 숨을 참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질서를 불러오고 세상은 마지못해 이해되기 시작한다. 화요일 6시, 토요일 10시 그리고 그밖에 시간에 맞춰 출렁대는 감정과 생각을 남의 것처럼 바라봤다. 

예전에 어느 영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유형을 나눈 것을 봤었는데, 나는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유형에 속했다. 지금도 그렇게 글로 생각하고 있어 두서없긴 하지만, 어쨌든 또 다른 유형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기자의 글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와 다른 삶을 다루기에 더 정확한 사실을 찾으러 더 깊은 사정을 담으려 더 깔끔한 글을 쓰려 애썼다. 이 글만이라도 내 편견에 잠식되지 않게 그렇다고 ‘물은 흐르고 물은 푸르다’ 식으로 관조적으로만 보지 않게 아슬아슬 파도를 탔다. 맹물이면 맹물대로 짠물이면 짠물대로 삼켜 왔던 내가 엄격한 공정 아래 바닷물을 정제해 ‘성대신문’이란 라벨을 붙이려 하니 낯설 수밖에!

어쩌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운명론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삼고초려 끝에 신문사 입사 직전, 실제 수영을 배웠던 것도 이 파도를 위한 예행연습처럼 느껴졌다. 아무렴 그렇다고 한들 그때의 나의 선택이 있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걸 안다. 하나의 선택은 하나의 조개껍데기를, 나뭇가지를, 해초를 줍게 했다. 나는 번역과 공간의 위대함을 알았고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텀블러를 챙기고 액션이 나오면 스턴트 배우를 찾고 이 달걀은 어떤 환경에서 탄생했는지 확인하고 하루의 시작과 끝에 죽음을 응시하는 사람이 됐다. 이 파도를 타지 않았더라면 스쳐 지나갔을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기억하지 않는다면 곧 사라져버릴 것들이라 하더라도 바닷가에 첫발을 디딜 때보다 다채로운 사람이 돼 이곳을 떠난다. 이젠 낯설기만 한 다른 바다로 첨벙 뛰어들겠지. 시원섭섭한 마음은 짠물로 달래고 이 글이 지금까지 지면에 실렸던 내 모든 글 중 가장 어리석고 못 쓴 글로 남길 바라는 바람만 살포시 불고 간다.    

황유림 기자 yu00th@skkuw.com
황유림 기자
yu00th@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