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분명 어제까지 나는 귀여운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은 왜 '에타' 취업 게시판이나 들여다보며 손톱만 딱딱 물어뜯고 있는 거냐. 헌내기가 된 지는 오래요, 두 달 뒤면 '이십 대 중반이냐 아직 초반이냐'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상대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스물셋이자 4학년인 너, 나, 우리.

그리고 이건 미래가 두려운 '사망년'의 학교 가는 길마저 낭만으로 점철된 스무 살 회고록.

대학생이 되었음을 등·하교를 통해 실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기상해 간단히 선크림만 바르고 체육복을 걸쳐 입으며 조식을 먹으러 갔던 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오후 수업만 있는 지금은 9시쯤 느릿느릿 일어나 선크림 위에 파운데이션과 색조 제품을 덧바르고 #ootd에 걸맞은 착장을 고르느라 아침밥은 포기한다. 투박한 책가방 대신 유행하는 브랜드 에코백에 지갑, 파우치, 충전기 등 책보다 중요한 물건들을 챙겨 넣고, 즐겨 듣는 노래가 흐르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기숙사 호실을 나서야만 비로소 끝이 나는 등교 준비. 1층 엘리베이터 앞 커다란 전신 거울에 다시 한번 내 모습을 점검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말 그대로 살랑대는 봄바람과 싱그러운 햇빛 속에 내가 서현진이고 공효진이다.

설렘은 원남동 사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창경궁 돌담길을 걸을 때 더욱 커진다. 19년을 인천 토박이로 살며 서울 나들이는 일 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던 나에게 매일 고궁을 벗 삼아 학교에 간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인천에 있는 모든 지인에게 ‘나 종로 한복판 창경궁 앞에 사는데 학교 갈 때 돌담길 걷는다. 신기하지.'라며 자랑 아닌 자랑도 해준다.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 아래 동화 같은 풍경은 홀린 듯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켜도록 만들고, 랜덤 재생으로 흐르고 있던 노래를 두근거리는 마음을 고조시킬 만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중에서도 ‘치즈’의 ‘일기예보’라는 노래가 제격이다. ‘사소한 순간의 기억도 은은하게 빛나는 행복이 되고 싶어요.’라는 상황에 예쁘게 잘 어울리는 가사와 청량한 멜로디가 소위 말하는 ‘소녀 감성’을 부드럽게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시작되는 나의 하굣길은 깜깜할 때가 많다. 특히, 학기 초에는 술자리가 많아 해가 떠 있을 때 기숙사로 돌아온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즈음, ‘이게 바로 스무 살이지’ 시답잖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오전과 확연히 대비되는 원남동의 야경에 또 다른 설렘을 느낀다. 감사함의 설렘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 동기,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거처로 돌아갈 수 있음에 가슴 벅참과 감사함을 느낀다. 수시 6장 모두 최초 합에 실패해 눈물과 고통으로 보낸 지난 나날을 곱씹으며 재수 학원이 아닌 대학교에서의 수업을 마친 후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고단하지 않다. 오히려 밤공기의 비릿한 냄새, 선선한 바람, 반짝이는 자동차와 거리의 불빛, 그리고 그 아래 은은하게 드러난 창경궁 돌담길의 어우러짐을 느끼며 오지도 않은 새벽 감성에 젖어 든다. 아침과 달리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배경 삼아 오늘 하루를 되새길 때 쓱 올라가는 입꼬리도 빼먹으면 섭하다.

길을 걷다 고개를 45도 올리면 아직도 가보지 못한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타워라고 해 봤자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모교 구름다리에 앉아 구경했던 남동타워밖에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TV에서나 볼 법한 랜드마크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나타나니 이 또한 신기하고 코끝 찡해질 정도의 감동이다. 촌스러워 보이지만 난 이 촌스러움을 즐기기로 했다. 사소한 것들에 온 마음을 다해 행복을 느끼는 일이, 복잡한 세상살이에 속이 곯을 대로 곯아 버린 후에도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니까. 두 달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어색하고 생소한 서울살이가 주는 저릿한 이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

 

조시연(아동청소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