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7년 전쯤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고향인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았으니 오는 토요일 저녁에 잠시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당시 1년 남짓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드디어 연락이 닿은 모양이다. 오랜 동안 고향을 떠나 생활한 나로서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초등학교 반창회에 참석하였다. 강산이 세 번도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기에 서먹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우리는 금세 그시절로 돌아가 어릴 때의 추억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건강하시고, 비록 은퇴는 하셨지만 여러 교육기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에 안도와 함께 모임은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졌다. 다음날 선생님과 함께 추억의 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햇살 따뜻한 한적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정성껏 포장한 책을 한 권씩 선물해주셨다. 박웅현 방송작가가 적은 ‘여덟 단어’라는 책이었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여덟 개의 단어(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다.

그날 오후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애청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엄마)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는 와 이렇노?”

“(딸) 엄~마. 팔자는 꺼꾸로 해도 팔짠기라. 우짜겠노!” 선생님께 받은 책 제목도 그렇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에도 ‘여덟(팔)’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여덟’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하는 숫자인 것 같다. ‘팔자’도 그렇고, 매년 우리학교 입학식에서 고유의식으로 행하는 종묘제례의식에서 여덟 명이 여덟 줄로 서서 ‘팔일무’를 춘다는 학교뉴스도 보았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이라고 하여 ‘팔정도’(정견, 정어, 정업, 정명, 정념, 정정, 정사유, 정정진, 팔성도)를 가르치는데, 여기에도 ‘팔’자가 들어간다. 그리고, 사서오경의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중국고서 ‘대학’에서는 큰 학문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 항목으로 ‘팔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을 강조하고 있다. 여덟단어, 팔정도, 그리고 팔조목에 나온 덕목들을 연결해 보면 대강 이렇게 되지 않을까? 자존-정념-수신, 본질- 정사유-치지, 고전-정업-격물, 견-정견-성의, 현재-정명-정심, 권위-정진-치국, 소통-정어-제가, 인생-정정진-평천하. 결국 책에서 말하는 ‘여덟 단어’는 불교와 유교경전의 정수인 팔정도와 팔조목의 현대적 재해석인 것 같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자존), 삶의 본질을 내 안에서 찾고(본질), 잊혀지지 않는 고전에서 지혜를 얻고(고전), 사물을 바른 눈으로 보고(견),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현재), 권위를 내려놓고(권위), 서로 소통하면서(소통)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인생)이 좋지 않을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많지 않고 누구나 조금씩은 불완전하지 않을까? 이 말은 누구나 단점이 있는 반면에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못하는 단점을 팔자로 둘게 아니라, 잘하는 것, 잘난 것을 팔자로 두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찾아가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소통하며, 그 안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한다. 책 내용도 좋았지만, 내겐 아득한 추억의 한켠에서 늘 응원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이라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