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선정 기자 (sunxxy@skkuw.com)

1970년대 모더니즘을 비판하며 새롭게 태동

대중과 소통하는 사회적 미술의 발판

미술 작품에 자유롭게 작가의 생각을 그려 넣지 못하는 시절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웠던 시절, 미술인들은 시대에 침묵하는 미술계를 따르지 않겠다며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대중과 함께 저항하기도 했다. 이를 오늘날 ‘민중미술’이라 부른다. 1980년대 민중미술가들은 당시의 현실을 어떻게 작품에 녹여냈을까.

1970년대 시작된 사회 비판적 미술 현상
민중미술은 1970년대 말~80년대 초 유신체제 종말과 신군부 세력이 득세하는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민주화 운동과 함께 태동한 사회 변혁·비판을 위한 미술 운동이다. 민중미술은 젊은 작가들이 미술의 사회적 참여를 요구하며 결성한 소집단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민중미술은 소집단 사이에 문제의식과 활동방식 등의 차이를 보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단국대 미술학과 홍지석 교수는 “민중미술은 닫힌 개념이 아니라 열린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예술과 사회의 관계 재정립에 나섰던 다양한 예술적 실천과 실험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미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다 
사회 비판적 시선을 작품에 반영한 초기의 소집단은 1979년 시대에 부합하는 미술의 기능과 존재 방식, 미술가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미술가와 평론가가 모여 결성한 ‘현실과 발언’이었다. 현실과 발언 회원은 작성한 창립취지문에서는 모더니즘이 지배적 경향이었던 당시 미술계의 내적인 문제와 현실을 외면하는 기성 작가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1970년 군사정권과 유신시절에 가장 활발했던 *모노크롬은 색채의 사용을 자제해 감정의 분출을 억제하고 단순 반복적인 붓질을 통해 무념무상의 초월적 정신세계 지향 등을 변별성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과 발언은 ‘화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란 질문을 창립취지문에서 밝히며 △만화 △조각 △판화 △콜라주 등의 방식으로 사회 내의 노동자, 농민들의 구체적 형상을 담아냈다. 특히 현실과 발언 동인 오윤은 <마케팅V-지옥도>(1981)에서 물질적 풍요에 젖어 살아가는 현실을 그리며 급격한 산업화를 비판하거나 1980년대 대중적 장르인 판화를 통해 민중의 삶을 담아냈다. 홍 교수는 “소집단간 미술 운동의 초점을 ‘미술의 혁신’과 ‘사회 현실의 변혁’ 중 어떤 것에 둘 것인가로 의견이 대립했다”고 말했다. 

현실과 발언이 모더니즘에 반발하며 작품창작과 전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사회변혁을 위한 조직적 연대 활동이던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이하 광미협)’와 ‘두렁’은 대중활동과 투쟁을 우선시했다. 광미협은 시민 미술학교를 개설해 판화를 가르치며 민중과 소통했다. 두렁은 최병수 화백과 함께 신문에 보도된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담은 대형 목판화 걸개그림을 제작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는 걸개그림을 두고 “커다란 규모 탓에 공동창작이 필요해 연대하는 미술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민중미술 다시 들여다보기
민중미술은 현실에 침묵하는 고답적 관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진보적 운동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는 미술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가능케 했다. 동시대의 진보적인 예술실천은 민중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미술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홍 교수는 “민중미술이 남긴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미술은 전문가들만이 행하고 누리는 배타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라며 “대중과 소통하며 완성하는 공동체적 미술로 연결 가능성을 열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민중 미술의 경향은 오늘날 미술로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맞닿아 있다.
 

줄서기 포즈를 취한 초창기 현실과 발언 회원들(1982년).
줄서기 포즈를 취한 초창기 현실과 발언 회원들(1982년).
아래 사진은 전시 "그림과 말 2020" 홍보 이미지(2020년). 왼쪽부터 손장섭, 주재환, 심정수, 성완경,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정동석, 민정기, 신경호, 임옥상,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 안규철, 박불똥.
아래 사진은 전시 "그림과 말 2020" 홍보 이미지(2020년). 왼쪽부터 손장섭, 주재환, 심정수, 성완경,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정동석, 민정기, 신경호, 임옥상,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 안규철, 박불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