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maywing2008@skkuw.com)
‘역사의 가치’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역사 시간, 기록된 역사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해 배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교과서에 나온 대로 ‘문자가 있기 때문에 글을 사용할 수 있고, 글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기록돼 우리는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정도로 말씀해주셨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역사책을 읽을 때, 그저 ‘이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나와 동떨어진 세계에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책을 읽는 것 역시 학문적 지식을 쌓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했다. 조선 시대 문신 류성룡의 저서 징비록을 집어 들었던 이유도 ‘역사 공부나 좀 해볼까’하는 가벼운 이유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
징비록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하는 생각이었다. 임진왜란 즈음에 조선의 상황이 어땠는지,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책을 통해 접한 당시의 상황은 현재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물론 저자는 나라의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였고, 나는 그저 국민 중 한 명일 뿐이라는 것과 현재가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고도화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등 사소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문제는 그 본질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예를 들면 혈기가 넘치지만, 전략이 없어 작전에 실패하는 사람도, 당장 자신의 앞길이 두렵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그리고 자신의 이득만 취하고 정작 희생이 필요하니 도망가는 사람도. 모두 현재도 내 주변에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들 이었다. 저자가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그들로 인한 역사적 결과는 무엇인지 엿보다 보니 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약간의 실마리를 얻은 것도 같았다.

 
역사책을 읽고 쓰는 이유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외에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역사의 가치에 대해 나름 확실히 정의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지나간 일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노라.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연유라 하겠다.” ‘징비’란 시경(詩經)에서 따온 구절로,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즉, 류성룡은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징계하고 자신 혹은 후대 사람이 전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후대 사람인 독자만이 일방적으로 역사를 통해 무언가 교훈을 얻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시 이 글을 쓰는 사람도 ‘후대 사람이 이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기록된 역사’란 기록하는 사람과 그 역사를 읽는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진정한 가치란 그 시대상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몇천 년 간의 간격을 가진 저자와 독자가 기록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며 류성룡과의 '소통'을 마쳤다.


 
김나래 부편집장maywing2008@
김나래 부편집장
maywing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