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목적을 불문하고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꺼려지는 요즘이다. 오늘은 볼 영화가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표류하던 도중 한지민(수영 역), 박형식(인수 역) 주연의 한 단편 영화를 만났다. <두개의 빛 : 릴루미노>는 삼성전자가 저시력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만든 VR용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소재로 제작한 31분의 러닝타임의 단편영화다. 그러나 영화 속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장애인들 간의 감정교류는 이를 단순한 상업 영화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나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자신의 역경을 타인의 도움 없이 온전히 감내하는 사람만을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 주체적인 사람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신체적 한계로 인해 불편한 부분에 있어 도움을 받을지의 여부를 스스로 선택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시야가 제한적이다’라는 한계를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는 장점으로 승화한다. 수영은 아로마 테라피스트로서 많은 회원들을 관리하고 체험 교실을 운영하며, 인수는 다른 사람들이 보다 정확한 음정을 들으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도록 그의 청각을 집중해 악기를 조율한다. 성장 서사 속에서, 이들은 도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주체에 가깝다.

그런데 이렇듯 ‘장애’라는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들조차 공감에 대해서는 아직 의외로 상투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극 중 수영의 말과 행동은 분명 부드러웠지만, 상대방인 인수가 그녀를 대하며 쩔쩔매어야 했다는 점에서, 그 이면에 강압성이 존재한다. 수영이 인수를 몰래 찍고 어떤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거나, 둘의 첫 만남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영에게 접근한 인수에게 앙칼지게 “어머, 누구세요?”라며 그를 놀라게 만드는 장면은 단지 수영이 인수와 같은 시각장애인이며 그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상대의 어려움을 재단하고 확신하는 행위는 그것이 선한 의도였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이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내 말과 행동이 모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의적인 판단하에 행해진 일방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어려움을 더 오래 겪을 사람과 덜 겪은 사람 간의 관계는 결코 이같이 한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갑을 관계로 표상되어서는 안 된다. 꼭 장애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다른 어려움에 대해 논할 때도, 같은 어려움을 상대보다 자신이 먼저 혹은 오래 겪었을지라도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변함없이 상대의 입장을 이성적으로 헤아리는 성숙하고 심도 있는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기존의 장애인 영화들과 달리 <두개의 빛 : 일루미노>에서는 시각장애를 가진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거의 이들만의 이야기로 서사가 전개된다. 비장애인들의 영화에서는 평범한 구성이었겠으나, 장애인이 주연인 영화로서는 평범하기에 특별한 것이다. 영화를 본 후 지금, 내게 장애는 주목해야 할 점이 아닌, 하나의 차이로서 다가온다. 이번 주말, 한가하다면 수영과 인수의 이야기, <두개의 빛 : 릴루미노>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현(사학 19)
김지현(사학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