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유림 (yu00th@naver.com)

인사캠 만남 - 조재룡(프문 87) 동문

사진 I 류현주 기자 hjurqmffl@skkuw.com
사진 I 류현주 기자 hjurqmffl@skkuw.com

 

“생각에서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번역입니다. 문학작품도 세상을 번역하는 거죠. 누구나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부터 직접 쓰고 번역한 책까지, 수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연구실에서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이자 작가, 번역가 그리고 문학비평가로 활동 중인 조재룡(프문 87) 동문을 만났다.

얼떨결에 진학한 프문과에서
문학으로 가는 길을 찾다

글 쓰고 번역하고 비평하기 
문학을 직업으로 삼다


문학 속에서 자라나다
어린 시절, 조 동문의 집에는 책이 넘쳐났다. 춘향전 필사본을 비롯해 할아버지가 남기신 책들이 많았고, 주변에 글을 쓰는 어른들도 많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 동문은 자연스럽게 독서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김유정의 『봄봄』,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 △전광용의 『꺼삐딴 리』등과 같은 소설을 읽었고, 중학생 때는 선생님들이 조 동문의 책을 빌려 갔을 만큼 수준 높은 독서를 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누나의 책꽂이에 있던 사회과학 서적을 즐겨 읽었다. 이처럼 그는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책과 함께 보냈다.

조 동문은 독서뿐만 아니라 미술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화가가 꿈이었고, 중학교에서는 미술부 활동을 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미대 진학을 꿈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부르더니 ‘너 미대 안 갈래?’라고 해서, 저는 좋다고 했었죠. 이 선생님이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신학철 화백이에요.”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신학철 화백의 권유가 있음에도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는데 남자가 미대에 진학한다는 것에 편견이 있었어요. 그리고 예술을 하는 삶이 힘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완고하게 반대하셨고, 대신 이과를 가라고 하셨어요. 저는 문과 취향인데.”

아버지의 말에 따라 이과의 길을 가던 조 동문은 재수를 하며 아버지의 허락 없이 문과로 전향했다. 국어국문학과(이하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조 동문은 우리 학교 국문과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께 성균관대 국문과를 가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부친께서 알았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보니까 프랑스어문학과(이하 프문과)에 지원서를 내신 거예요. 왜 그랬냐고 했더니 국문과에 가면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할 것 같으셨대요. 대신 제2외국어를 배워서 외국 무역 회사에 취직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학교생활·정신상태 엉망, 반항지수 높음”
“당연히 학사경고를 받았죠. 제 학점이 선동열 선수 방어율이었어요. 0.89” 예상치 못한 프문과 진학 때문이었을까, 조 동문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어는 전혀 하지 못했고, 공부할 마음도 없었고, 수업도 잘 안 들었어요.” 문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프랑스 문학에 관심은 별로 없었기에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10월에 제대했는데 학력고사를 다시 봐서 문예창작과로 가고 싶었어요. 근데 11월에 시험인데 어떻게 한 달 만에 준비해요. 그래서 포기했죠.”

제대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조 동문은 외무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시험을 준비한 지 2달 정도 된 어느 날, 새벽반 수업을 듣고 학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해가 뜨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갑자기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지?’, ‘내가 원하는 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방황을 하던 조 동문은 복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학사경고를 받지 않기 위해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을 봤어요. 근데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원서를 들여다보는데 재밌더라고요. 하루에 12시간 공부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어의 재미를 알게 된 그는 복학 후, 과 수석 자리를 차지했다. “복학 전의 제 모습을 아는 애들은 ‘쟤 학점이 어땠는지 알아?’라고 말하더라고요. 공부밖에 안 했죠. 그거밖에 할 게 없었고 너무 재밌었어요.”
 

프랑스어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다
프랑스어의 재미를 느낀 조 동문은 두 명의 스승을 통해 더욱 성장했다. “홍성호 교수님의 ‘프랑스비평’, ‘프랑스근현대문학’, ‘프랑스계몽주의문학’ 등의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문학비평과 이론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다른 한 명은 현재 프랑스 국립동양어대 명예교수인 파트릭 모뤼스(Patrick Maurus) 교수이다. “한국 문학 전공자이자 뛰어난 번역가였던 선생님께 한국 문학은 물론 문학 이론 전반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프랑스어로 한국 문화 얘기를 하면서 매일 만났죠. 저의 평생 스승입니다.” 조 동문은 지금까지도 파트릭 모뤼스 교수와 함께  『남북한 프랑스어 사전』을 출간하는 등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 교수님이 없었으면 저는 다른 길을 갔을 거예요.”

조 동문은 전공 수업 이외에도 타학과 전공 수업을 찾아 들었다. 그는 수업 명, 교수명, 그리고 수업 내용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철학과 3학년 수업인 한만희 교수님의 ‘논리학’을 들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을 다룬 수업이었죠. 그때 제 별명이 ‘좌재룡’이었습니다. 맨 앞에 왼쪽에 앉아 있었다고. 한 번도 안 빠지고, 늘 복습해갔죠. 수업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는 이외에도△'민중문학'△'영미시특강'△'카프문학론'  △'프랑스철학특강' 등 다양한 철학과 문학 이론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학과 수업 외에도 조 동문은 학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조 동문은 ‘행소 문학회’에서 △이론서 탐독 △작품 품평 △창작 세미나 등을 하며 문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법대에서 고시 공부하는 애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세미나장이었을 때, 후배들이 책을 안 읽고 오면 정말 화냈죠. ‘너는 문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학 한다고 발 걸쳐놓고 시간 낭비하는 거다. 그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조 동문은 ‘행소 문학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행소 문학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 지금도 가끔 만나요.”

조 동문에게 대학 시절 진로희망을 묻자, 목표를 정하는 대신 ‘하지 않을 일’ 목록을 작성했었다고 답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거꾸로 찾아봤어요.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생각했는데 결국 문학밖에 없더라고요. 이거 외에는 한 번도 다른 걸 꿈꾼 적이 없었어요. 제가 이걸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문학이 제일 좋은데 어떤 다른 일을 하겠어요.” 문학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프랑스 문학으로 좁혀졌고, 조 동문은 공부를 이어가고 싶었다. “프랑스 문학에는 제가 궁금해하는 것, 문학에 관한 것, 이론이 다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조 동문은 학부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됐다.

“모든 생각이 바뀌었고 또 한편으로는 바뀌지 않았다.” 조 동문은 이 한 문장으로 프랑스 유학 시절을 표현했다. 조 동문은 프랑스 아미앙대와 파리 제8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보냈다. “유학 당시, 무엇보다도 문학 이론이나 시학 등에 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조 동문은 글로만 배웠던 프랑스를 직접 경험하며 ‘타자란 무엇인지’, ‘지(知)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통해 많은 생각이 다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학이 직업이다”
2002년 2월 2일, 조 동문은 박사 학위 논문을 끝냈다. 그리고 같은 해 1학기부터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조 동문은 학생 때 좋은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처럼, 교수가 되어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저는 강의에서 발표를 시키지 않아요. 프랑스어로 말하자면 ‘cours magistral’, 즉 ‘교수가 직접 하는 강의’에요. 지루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굉장히 잘 들어줬어요. 눈이 반짝반짝하던 게 기억나요.” 그에게 대학 강의는 어떤 의미일까. “저한테 대학 강의는 되게 신성한 거예요. 프랑스어로 ‘professer’의 뜻이 ‘교수하다’에요. 그리고 어원은 ‘믿음을 고백하다’에요. 지(知)를 고백하는 행위가 바로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조 동문은 작가, 번역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한다. 그는 이에 대해 “직업이라기보다는 가치 있다고 믿는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번역, 비평은 생활인 거 같아요. 특히 번역은 외국 문학도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각 활동의 차이점을 묻자 번역과 비평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번역은 근본적으로 비평 행위에요. 텍스트의 작동 기능을 알아야 번역을 하죠. 직접 외국어를 옮기는 번역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 번역가 활동을 합니다. 우리가 사유하는 것도 번역을 통해서 하는 거죠.”

조 동문은 현재 최연소 한국비교문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타자의 문학을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과 번역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오로지 번역에서만 존재하는 게 비교문학이에요.” 이어 그에게 ‘문학’에 관해 묻자 그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취미판단을 하는 거잖아요. 예전과 생각이 바뀌었어요”라며 “‘문학을 좋아한다’가 아니라 ‘문학이 직업이다’에요”라고 덧붙였다.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셔도 됩니다
올해 계획을 묻자 조 동문은 답했다. “올해는 비평하고 번역하고 논문 쓰고, 이 계획은 변함없어요.” 10년 동안 220개의 원고를 썼다는 그는 “번역? 그냥 하는 거죠. 강의? 열심히 해야죠. 글 쓰는 거? 문학비평가잖아요”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문학 공부를 하는 삶이 망설여지는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말을 남겼다.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셔도 됩니다. 단순히 ‘문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인생 선배로서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직접 번역했던 문장을 얘기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힘을 주소서. 이 양자를 구별할 현명함을 제게 주소서.”
 

조 동문이 번역한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조 동문이 번역한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