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정현 (jhyeonkim@skku.edu)

자과캠 만남 - 이준형(의학 97) 동문

사진  I 류현주 기자 hjurqmffl@skkuw.com
사진 I 류현주 기자 hjurqmffl@skkuw.com

“거기서 의사들은 너무 노는 것 같아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웃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 대신 슬기로운 진짜 의사는 병원의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따뜻함과 편안함을 가진 우리 학교 의과대학(이하 의대) 1회 입학생 이준형(의학 97)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치열하지만 재밌던
의대 유생의 나날들
전통을 가진 우리 학교
자랑스러워


공학도에서 의학도가 되기까지
이 동문의 초등학교 시절도 우리 학교와 함께였다. “재동초등학교에 다닐 때 오후수업을 하다 보면 최루탄이 학교로 넘어왔어요. 삼청공원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최루탄이 넘어오면 너무 매워서 집에 가기도 했고요. 어디서 넘어온 건지 생각해보면 근처에 있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넘어오는 거였죠.”

이 동문이 본격적으로 우리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산업공학과 92학번으로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학교 선생님의 조언대로 낮춰서 쓴 전기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에 지원할 때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쓰겠다’ 해서 우리 학교 산업공학과에 지원하게 됐어요. 사실 그때는 산업공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잘 몰랐어요.” 이 동문은 군 제대 후 복학한 3학년 때부터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동문이 산업공학과를 다닐 때는 IMF 직전 호황기라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할 기회가 많았지만 이 동문은 ‘내가 평생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산업공학과를 나오면 주로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해요. ‘이 일을 평생 계속하면 재밌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이 동문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의사였다. “내가 즐겁게 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 내 이상을 실현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러한 고민에 부합하는 직업이 바로 의사였어요.” 이 동문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휴학한 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우리 학교에 의대가 없어서 다른 학교 의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능을 볼 때쯤 우리 학교에 의대가 생겼죠.” 당시 수능을 잘 봤던 이 동문은 모든 학교 의대에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들어맞아 우리 학교 의대에 지원했다.  1997년에 신설된 우리 학교 의대에 합격한 이 동문은 의대 1회 입학생이 됐다.
 

의대에서 1회 입학생으로 살아남기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선배가 없어서 교수님들이 많이 챙겨주셨어요.” 당시 의대 교수들은 이 동문을 포함한 1회 입학생 40명을 알뜰살뜰 챙겼다. 특히 현재 우리 학교 의대 학장인 최연호 교수가 많은 것을 챙겨줬다. 이 동문은 “인원이 적으니까 동기 모두가 다 같이 MT를 가게 됐는데 MT를 가면 교수님 몇 분이 오셔서 같이 놀다 가셨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편의시설은 없었지만 풍경 좋은 자과캠은 의대 1회 동기들이 같이 지내기 좋았다. 이 동문은 그 속에서 공부도 치열하게 했다. “당시에 예과, 본과 구분 없이 임상 과목을 많이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과 1학년 때 배우는 교양 과목 진도가 매우 빠른 편이었죠.” 이 동문의 예과 시절은 열심히 공부했던 순간으로 가득했다. “예과 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많은 친구들이 일정 학점 이상을 받아야 하는 삼성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다 같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그 분위기 덕분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의대 1회 입학생으로서 힘들었던 점도 있었다. 산업공학과를 다닐 때는 다양한 노하우를 가르쳐주던 선배가 있었지만 의대에는 선배가 없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내과 공부를 한다고 하면 내과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해요. 그런데 다 봐서 외울 만큼의 양이 아니었죠. 엄청 많았어요.” 공부할 때를 제외하면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부분은 많지 않았다. “학장님을 포함한 교수님들이 굉장히 열심히 가르쳐주셨죠. 학생들의 성적이 잘 안 나오거나 원하는 만큼 안 나온다 싶으면 어떤 게 잘못됐을까 고민하시며 적극적으로 학생들과 상호작용하셨어요.”

당시 교수들은 *PBL이라는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아픈 부위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환자를 구별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PBL은 외국에서 보편화된 교육 방법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다. “PBL은 한 분야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를 함께 이해하게 해야 하고 문제 해결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어서 손이 많이 가는 교육방식이에요. 교수님들이 굉장히 열심히 가르쳐주셨죠.”

본과 3학년이 되면서 이 동문은 병원에서 실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 동문은 현장을 돌면서 훨씬 더 많이 공부해야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분량이 점점 많아졌어요. 학년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3학년에 올라가니까 2학년 때 배웠던 게 너무 쉬웠죠. 그런데 4학년에 올라가니까 3학년 때 저걸 못했나 싶었어요.” 실습을 돌 때 재밌었던 에피소드로 이 동문은 동기들과 서로에게 연습했던 것을 꼽았다. 동기들과 ‘나 한 번 피 뽑을 테니까, 너도 내 피 한 번 뽑아’라고 하며 서로에게 실습을 진행했다. 그중 이 동문의 기억에 가장 남는 건 *L튜브 실습이었다. 이 동문은 “L튜브는 소화기내과를 돌 때 배우는데 우리끼리 연습할 수밖에 없었죠. 못하는 사람이 하면 구역질이 나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코로 넣으면 입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다양한 진료과가 있다는 장점은 이 동문이 의대에 큰 흥미를 갖게 했다. 또한 이 동문은 의대를 다니고 실습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실습을 하는 학생 때는 하는 게 거의 없었죠. 그래도 환자들을 만나며 지금 어떻게 아픈지, 마음이 어떤지 얘기를 해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험난했던 인턴·레지던트 과정
이 동문은 삼성의료원에서 인턴을 할 때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직을 서면 많이 자야 2~3시간을 잤어요. 어떤 날은 언제 콜이 올지 모르니까 옷이랑 신발 아무것도 안 벗고 침대에서 다리만 밖으로 걸쳐놓고 자기도 했죠.” 특히 수술을 자주 하는 신경외과 인턴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인턴은 수술실에서도 일하지만 주로 환자를 관리하는 일을 도맡아 해요. 수술이 오후 10시에 끝나면 또 일을 해야 했죠.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었어요.”

이 동문은 인턴 때 재밌었던 에피소드로 신생아실 주치의를 할 때를 꼽았다. 2004년 9월 중순에 첫 아이가 태어난 이 동문은 공교롭게 그해 10월에 신생아실 주치의를 맡게 됐다. “병원에서는 온종일 아기들이 울고 집에 가면 우리 집 아이가 울었어요. 24시간 동안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기 울음소리가 안 들리면 ‘무슨 일이지?’ 싶을 정도였어요.”

인턴을 마치고 진료과를 선택할 때 이 동문은 무슨 과가 자신과 맞을지 고민이 많았다.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됐던 건 의대로 진학하게 된 계기였다. “배가 아파서 찾아가면 치료해주는 동네 병원 의사처럼 되고 싶어서 의대로 진학했었죠. 그때 의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리고 가정의학과에 가게 됐어요.” 또한 이 동문은 가정의학과가 공공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진료과라 흥미를 느꼈다.

의사 과정에서 일의 양이 가장 많을 때는 레지던트 때다. 이 동문도 레지던트 때 많은 양의 일을 소화했다. “당직을 서면 24시간을 꼬박 일하는데 밤에 콜이 없으면 5~6시간 정도는 잘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일이 터지면 밤을 새우고 일해야 했죠.” 당직이 아닐 때도 할 일은 많았다. 이 동문은 “회진이 끝나고 퇴근해도 발표를 준비하고 배운 것들을 다시 공부해야 했죠. 지나고 보니까 학교 다닐 때는 공부량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라며 힘들었던 레지던트 생활을 떠올렸다.
 

진짜 슬기로운 의사생활
우리 학교 의대 최초로 전문의 시험을 준비한 이 동문은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시험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지는 않았다. 한 달 정도 집중해서 공부해 전문의 시험을 치렀다. “학생 때부터 레지던트 때까지 충실히 교육을 해주는 환경에 있어서 잘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전문의 시험을 준비했죠. 공부에 있어 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동문은 자신을 거쳐 간 많은 환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레지던트 때 맡았던 환자 중 사망한 환자들은 이 동문의 기억에 깊게 남았다. 또한 의사생활을 하며 이 동문의 기억에 남는 환자는 가족 단위로 진료를 받은 환자이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진료를 보면 가족의 생활습관을 고치기가 훨씬 쉬워요. 의사로서 가장 보람찰 때도 생활습관을 변화 시켜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을 때죠.” 또한 이 동문은 환자를 볼 때 그로 인해 환자가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진료한다.

교수가 된 이후로 이 동문은 학생을 가르칠 때 가장 큰 책임감을 느낀다. “학생들에게 교육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자들이 내가 가르쳐 준 것으로 조금이라도 쉽게 의학지식을 잘 습득했으면 해요. 또 정성을 들여서 진심으로 환자를 볼 수 있었으면 하고요.” 이 동문의 바람은 자신의 제자들이 기억해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제가 닮고 싶은 의사인 서정돈 교수님을 아직 기억하면서 환자를 보듯이 제자들이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네요.”
 

자부심을 가지고 견문을 넓히기를
이 동문은 우리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산업공학과 92학번부터 의대 석사, 박사 학위까지 학교만 20년을 넘게 다녔죠. 우리 학교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학교예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었던 성균관의 맥을 잇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학교여서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이 동문은 후배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를 당부했다. “후배 여러분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또한 이 동문은 “학교를 넘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견문을 넓혀야 해요. 그래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사회인이 되기 전인 대학생 때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준비를 했으면 해요.”
 

*PBL=Problem-based learning, 문제 중심 학습.
*L튜브=환자의 코를 통해 음식 공급 및 노폐물 제거 시 사용되거나 위장 내 액의 주입 및 추출, 고정 등에 사용하는 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