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작년 가을, 그러니까 남들은 이미 개강하고 1달이 되어가던 즈음이다. 나는 내 덩치보다 큰 짐을 두 개나 끌고 출국길에 나섰다. 한국보다 개강이 1달가량 늦는 그곳, 바로 일본 나고야에서 나의 반년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는 법. 같은 곳에서 떠나온 우리들은 종종 교환학생이라는 특별한 시간의 끝이 얼마나 남았을지 종종 가늠해보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나름의 근거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이 남았다고 자부했다. 그것은, 한국보다 개강이 늦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종강이 더 늦는 일본의 학사일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날로그로 흘러가는 일본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나고야는 겨울에 하얀 눈을 보기 힘든 도시기에, 12월이나 1월에도 쌀쌀한 가을 날씨만이 만연한 곳에서 시간의 흐름이 쉬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해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같이, 또 따로, 열심히 살았다. 학교 공부나 언어 공부는 물론, 여행이나 동아리, 맛집 투어와 산책하는 한낱 발걸음 하나까지 모든 시간이 이곳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미 있었다. 공부를 쉬어 가던 날은 놀러 가는 추억이 생겼고, 놀지 못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만 해도 그것도 경험이었다.

어느새 한 학기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우리는 벌써 지난 반년 동안의 추억을 돌이켜보아야 할 때를 맞이했음을 깨달았다. 마음이 따라가기도 전에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래, 떠날 준비를 하자. 돌아가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도 있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도 있었다. 돌아가기 전에 다시 먹어봐야 할 음식들이 많았고, 한편 미처 못 먹어본 음식은 어서 먹어봐야 할 때였다. 그리고 작별을 고해야 할 인연들도 있었다.

내면에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나는 귀국 준비를 대강 마치고, 보금자리가 되어 준 조그만 동네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동네는 크지 않았고, 예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던 저 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뻤다. 정이 든 줄도 모른 채 정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리워할 것들투성이였다. 일상적으로 다니던 학교 식당, 교환학생 사무실, 기숙사, 근처 편의점과 마트들. 낯설었던 존재들이 언제 내 안에서 이렇게나 익숙해진 건지 모를 일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사라질 운명의 일상이었음을, 그래서 더욱 특별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마무리는 화려했다. 비상용으로 넉넉히 남겨두었던 엔화는 내 이성을 거치지 않고 맘껏 나고야 명물 음식과 기념품들로 변신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출국 전날 나고야역 건너편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야경이었다. 큰 추억이든 작은 추억이든 상관없다. 반년 동안 무사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다. 어디서든 만나 함께 추억을 만들어 준 인연들에 고맙고, 생활을 영위하게 해준 편의점과 마트와 백화점에 고마웠다. 언제 올려다보아도 맑은 햇살을 비추어 주던, 예쁜 추억들을 만들어 준 이곳이 고마웠다.

하늘, 풍경, 공기, 사람들, 그 모든 것에 작별 인사를 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오더라도 분명 2019년의 가을은 아니겠지. 그렇기에 더욱더 그리울 그 해, 그 가을의 나고야와 나의 이야기였다.

류자임(글리 18)
류자임(글리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