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영화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모피어스의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네오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인 ‘매트릭스’를 진짜인 줄 알고 살아왔다. 본인이 살아온 세상이 그저 기계들이 조작해낸 ‘가짜’였음을 알게 된 네오는 절규한다. “이렇게 내 손에 느껴지는 가죽 소파의 감촉이 다 가짜라니? 하물며 매 순간 혀와 코로 느껴온 맛과 냄새는 셀 수조차 없는데!” 혼란스러워하는 네오에게 돌아오는 모피어스의 대답은 냉혹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네오는 책을 한 권 꺼내든다. 바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 진중권 작가가 쓴 『미학 오디세이 3』의 표현을 빌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시뮬라크르는 원작 없는 복제이다. 복제는 옛날부터 행해져 왔다. 화가들이 자연을 보고 직접 그림을 그리듯, 전통적 복제에는 원본과 복제품 사이에 인간의 손이 개입했다. 반면 사진과 영화 같은 새로운 매체는 다르다. 한 개의 필름에서 뽑아낸 수많은 사진 중에서 어느 게 원작인지, 전국 동시 개봉된 영화 중에 어느 게 원작인지 알 도리가 없다. 원본 없는 복제품인 사진과 영화를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뮬라크르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활판인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다. 사진이나 영화만이 시뮬라크르가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방송, 인터넷에 떠도는 뉴스들, 수천만 개의 유튜브 채널에 실시간으로 게시되고 있는 기술 복제 영상들이 모두 시뮬라크르다. 이것은 가상도 아니고 실재도 아닌 유령 같은 존재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법원 앞에서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어떤 채널에서는 사람의 밀집도가 낮은 장소를 영상으로 찍어 시위 참여 인원을 5만 명이라 주장했다. 다른 장소에 사람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으므로 그 영상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된 것이 아니다. 영상에 찍힌 장면은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동시에 참이다. 복제 영상은 이렇게 참, 거짓의 구별을 흐려버린다.

그나마 아침에는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방송 3사의 뉴스를 챙겨보던 시절에는  사정이 좀 더 나았을까. 국내 유튜브 뉴스 채널은 약 532개에 달하고, 사람들은 방송 3사의 뉴스를 믿지 못해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원한다는 것을 꿰뚫고 관련 영상을 계속해서 추천해준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보수 유튜버의 영상물을, 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진보 유튜버의 영상물을. 이미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시뮬라크르에 매몰당한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영화 속 모피어스의 대사를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WHAT IS R.E.A.L?

박채연 부편집장
박채연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