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다겸 (dgflying05@skkuw.com)

인사캠 만남 - 조형준(무용 03) 동문


조형준(무용 03) 동문사진 l 유다겸 기자 dgflying05@skkuw.com
조형준(무용 03) 동문
사진 l 유다겸 기자 dgflying05@skkuw.com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안무가가 왜 뜬금없이 건축과 협업하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와 안무가가 결성한 듀오 ‘뭎’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형준(무용 03) 동문을 자양동의 한 옥탑에서 만났다.

어릴 적 가수들 보며 춤에 대한 관심 키워
틀을 깨는 매력에 끌려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바꿔

씨름 선수에서 무용학과 지망생이 되기까지

“어릴 적 가수를 보면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게 됐어요.” 어린 조 동문의 눈에는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가수가 멋있어 보였다. 그는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을 보며 춤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조 동문은 춤뿐만 아니라 운동도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학교 씨름부에 들어가 선수로 활동했다. “사실 씨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씨름부 담당 선생님이 운동을 잘할 것 같다며 제안하셨죠. 생각해보니 씨름부 선배도 멋있고 매점에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린 마음에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씨름부에 들어간 조 동문은 도 대회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씨름에 흥미를 붙이지 못해 1년도 못가 그만두고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고등학교 시절 조 동문은 무용의 세계로 들어서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무용을 시작했어요. 원래 춤을 좋아하기도했고 무용 학원 선생님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을 제안하셨죠. 그때부터 막연하게 무용수가 되기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는 자연스럽게 무용학과 진학을 생각하게 됐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방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여서 무용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또 무용은 소위 ‘딴따라’라는 편견이 강했어요. 그래서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 공부하길 원했죠.” 그러나 조 동문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무용에 대한 열정을 꽃 피우다
대학에 들어온 조 동문의 무용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그는 순수하게 춤을 많이 추고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학년 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습을 정말 혹독하게 했어요. 제가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한국무용을 하는 남자 학우가 저 한 명뿐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교수님들 눈에 띄어 어쩔 수 없이 공연도 많이 맡게 됐죠. 밤늦게 연습하는 것은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낮에는 학교에 안 갔어요.” 조동문은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연습에 매진하던 조 동문의 대학 생활은 단조로웠다. “대학 때 좋은 교양 과목도 많았는데 열심히 찾아서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동아리도 하나도 안 들어갔는데 그런 점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아쉬워요.”

조 동문은 대학 시절 공연했던 <공자>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공자>는 공자의 일생을 담은 한국 창작 무용이다. “<공자>에서 주인공 공자 역을 맡았어요.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죠.” 주인공이라는 자리뿐만 아니라 공연 규모도 조 동문에게 부담을 줬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정말 큰 공연이었어요. 그래서 교수님도 심혈을 기울이셨죠.” 조동문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것이 그때 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큰 공연이었다.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26살이 되던 해에 조 동문은 부상을 당했다. 그동안 춤을 추면서 몸에 쌓여왔던 피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프더니 목이 점점 안 좋아지더라고요.” 조 동문은 부상 때문에 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바로 현대무용이었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한국무용 같은 경우에는 호흡으로 움직이는 측면이 강한 반면에 현대무용은 관절이나 뼈, 근육과 같은 구조적인 측면을 중시하죠.” 그는 현대무용을 하면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어 한국무용보다 덜 다치면서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현대무용만이 가진 특성에 매력을 느꼈다. “현대무용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진보적인 느낌이 있어요. 클래식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에 현대무용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틀을 깨는 매력이 있어요.”

조 동문은 안무가 정영두의 공연 <제7의 인간>에서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선보였다. 현대무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조 동문은 오디션에 합격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 합격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능숙함과는 다른 시작했을 때의 에너지가 있잖아요”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현대무용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중, 조 동문은 국립현대무용단에 입단하게 됐다. 국립현대무용단 입단은 무용수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는 직장인과 같이 똑같은 생활을 해요. 출근도 하고 월급도 나왔죠. 그런 패턴이 저와는 잘 안 맞더라고요. 자유롭게 생활을 하다가 출근해야 하니 어려웠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래도 다니다 보니 익숙해져서 3년 동안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동했죠. 1년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는데 3개의 프로젝트를 끝으로 나오게 됐어요.”

자신의 고민을 작품에 담아내다
현재 조 동문은 안무가로서 손민선 건축가와 협업해 듀오 ‘뭎’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안무가 정영두 무용단에 소속돼있을 때, 우연히 LG아트센터에서 ‘몸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기획을 했어요. 공연 네 파트 중에 한 파트를 제가 맡게 됐죠.” 그 과정에서 조 동문은 안무가라는 역할을 경험하게 됐다. “다른 장르와 협업한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처음 건축과 협업했을 때 조 동문은 대형 건축회사와 함께 일하게 됐다. 그러나 대형 회사라 그런지 그가 생각하는 협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더라고요. 소통이 안 되다 보니 계속 충돌이 생기게 돼 차라리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조 동문이 떠올린 가까운 사람은 당시 그의 여자친구인 손민선 건축가였다. “그때부터 함께 듀오 ‘뭎’을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협업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 동문은 말했다.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증이 생기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협업을 더 잘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조 동문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답했다.

이제는 무용이 아닌 공연 기획을 하게 된 그는 공연의 의미와 속성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됐다. “공연은 ‘장소’ 사이에 일시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다소 난해할 수 있다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공간과 장소를 혼동해서 사용하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어요. 공간은 맥락 없이 비어 있는 곳이에요. 반면에 장소는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쌓인 곳이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주변에 장소가 아닌 곳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빽빽하게 들어찬 장소 속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공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간에 맥락들이 쌓여 장소를 만들지만 반대로 저는 공연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장소 속에 일시적인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순환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고민의 결과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최근 조 동문은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공연의 속성이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작품이라 시간과의 관계성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공연은 그림과 같은 예술과 다르게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떻게 겹쳐지는지에 대해 관심이 가더라고요.”

“처음에 ‘뭎’을 결성했을 때는 몸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는 몸과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했다. “고민을 이어 나가다가 둘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몸이 없는 공간은 경험할 수 없고 공간이 없는 몸도 관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더라고요.” 그는 몸이 공간의 특성에 지배당한다고도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철저히 공간의 지배를 받죠. 공간은 행동을 유도해요. 예를 들어 이 공간에 의자가 없었으면 기자님은 바닥에 앉거나 서 계셨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조 동문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동선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이를 그의 작품에 녹여냈다. 심지어 그는 한 달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의 동선을 관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 동문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공간과 맞물려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대중들은 메시지나 서사가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저희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의 작품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이야기가 없거든요”라며 조동문은 자신의 예술관을 설명했다.

앞으로의 꿈, 그리고 후배들에게 한마디
“가장 바라는 것은 즐겁게 사는 것이에요. 먹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근데 그게 쉬워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다. 끝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조언을 듣겠지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Open set} ⊂ Phase lag, 2018 공연 사진.최연근 동문 제공
{Open set} ⊂ Phase lag, 2018 공연 사진.
ⓒ최연근 동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