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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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워라밸과 일자리’ 두 마리 토끼 잡아
노동자의 처우개선,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지난해 2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 이후 약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주 52시간 근무제는 한국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켰을까.

 

개정된 근로기준법, 무엇이 달라졌나
우리나라 근로자는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었다.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하면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이 26개로 광범위하게 규정돼있는 것도 장시간 노동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을 대폭 축소해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하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됨에 따라 주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이 줄어들었다.

26개였던 특례업종은 법 개정 후 5개로 축소됐다.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관련서비스업 △보건업에 해당하는 사업만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할 수 있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육상운송업 중 버스 등의 *노선여객자동차 운송사업은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버스는 특례업종 제외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정부는 오는 7월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저녁이 있는 삶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근로시간이 감축됨에 따라 직장인들은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을 누릴 수 있게 됐다. 300인 이상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 모씨는 “8시 반과 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한 뒤, 정확히 8시간 근무 후 퇴근할 수 있어 좋다”며 줄어든 근로시간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일의 능률이 올라갔냐는 질문에 그는 “확실히 효율이 높아진 것 같다”고 답했다. 전에는 업무를 미루다 저녁에 회의를 잡거나 주말에 출근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법을 어길 수 없어 주중 근무시간에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퇴근 후 직장인이 여가를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평균 여가시간은 주말 5.3시간, 평일 3.3시간으로 최근 집계인 2016년에 비해 각각 0.3시간씩 늘었다. 월평균 여가 비용도 같은 기간 15만 1000원으로 1만 5000원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최 모씨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며 “일주일에 3번 나가는데 일 때문에 못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직장인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친구를 더 자주 만나거나 가볍게 운동을 나갈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무제가 아직 미흡하다는 입장도 있다. 최 모씨는 “주 52시간을 계산할 때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계산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특정 시기에 몰리면 야근을 해야 하므로 당연히 주 52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못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매일 규칙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일자리 창출 효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일자리를 나누는 기능이 있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 최대 18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예측의 타당성에 대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소장 조대엽) 김성희 교수는 “프랑스, 독일, 일본의 노동시간 단축 과정을 지켜본 결과 생산성 효과를 고려할 때 18만개의 2/3 정도인 12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약 1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시간 단축에 비례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김 교수는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하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며 “고용 창출에 대한 부담은 생산성 향상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부담은 ‘정부의 고용 창출 지원금’과 ‘노사 간의 분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한 30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채용 인건비 지원금액이 인당 월 최대 8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제공되며, 최대 2년에서 3년까지 지원한다.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채용 인건비 지원 금액을 월 40만원에서 월 60만원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책이 존재함에도 기업들은 직접 일자리를 더 늘리지 않고 생산성을 유지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추가 고용을 자동화 설비가 대체하거나 외주 업체 용역을 통해 인력을 충당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된다면 주 52시간 근무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김 교수는 “기업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감소, 외주 업체 용역 등 부정적인 효과를 제어하는 견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고용 창출을 위한 유인책만 있으며,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견인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독일 등에서는 지원금의 3~4배에 달하는 벌칙금으로 견인책을 써서 긍정적 효과를 압도하는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견인책을 확충해 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기업의 편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워라밸이 보장되고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추가 고용이 이뤄지지 않아 노동의 강도가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일감은 그대로인데 기업이 사람을 더 뽑지 않아 일터에서는 여러 가지 편법과 제도의 악용 사례가 나타났다.

일례로, 지난 13일에는 우정사업본부 소속 30대 무기계약직 집배원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집배원 이 씨는 주 52시간 근로 정책을 형식적으로 준수해야 했던 탓에 퇴근 등록을 한 뒤에도 공짜 노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근로시간은 단축됐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인력을 늘리지 않아 기존 집배원들이 기록되지 않는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퇴근 등록을 하고 난 뒤에 집으로 가야 하는데, 우편 물량이 남아 있으니까 집배원들이 무료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사망 사고가 났다는 것은 기업이 편법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함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정부가 처벌 수위 최대한도만 높인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제도를 위반하면 반드시 단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완벽한 정착을 위해서
김 교수는 “잔업 특근(시간 외 노동)을 통해 부족한 돈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추가 근무를 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임금 감소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와 기업이 이들의 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그는 “*통상임금 판결이나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을 통해 임금 구성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을 낮게 책정하면 노동자는 장시간 일을 해서 부족한 소득을 메꿔야 하지만, 임금을 인상하면 주 52시간만 일을 해도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역할에 대해 김 교수는 “기업들은 장기간 노동으로 얻었던 이익을 환원한다는 차원에서도 임금감소 없이 노동자들의 시간 단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선버스 기사와 우정사업본부 집배원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정부와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통상임금=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ㆍ일급ㆍ주급ㆍ월급 또는 도급금액을 말한다.
*노선여객자동차 운송사업=노선을 정하고 정기로 운행하는 자동차에 의하여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