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나영 기자 (skduddleia@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장애인 현실 충분히 반영하나
조 교수 “진정한 문제 해결 위해서는 충분한 협의 필요”

오는 7월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지체장애인 1급, 시각장애인 3급 등으로 불린 장애인은 더는 등급으로 불리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부터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인에게 장애등급을 부여했으며, 장애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쳐왔다. 이들의 오랜 바람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장애등급제는 무엇인가

장애인은 장애 상태와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사항을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장애인등록을 신청한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 2조에 의해  의학적 기준에 따라 정부로부터 장애등급을 부여받는다. 장애등급은 제한된 복지 서비스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데 활용되며, 장애인 복지 정책을 수립할 때도 이용된다. 장애인 복지는 △건강지원 △고용지원 △교육지원 △생활지원 등 삶의 여러 방면에서 제공된다. 필요한 복지 혜택은 환경에 따라 개인마다 다르다. 이에 의학적 기준으로 나눠진 장애 등급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부양의무제 폐지와 탈시설화와 함께 장애인복지정책의 3대 과제로 해결이 요구됐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시행할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주 내용은 장애인복지법 및 장애인활동지원법 등을 개정하고 오는 7월부터 장애등급제 폐지 법률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기존 6등급제로 나눠진 장애등급은 장애정도로 표현이 바뀌어 1급부터 3급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4급부터 6급까지는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되며 단순화된다. 보건복지부는 장애 정도에 따른 구분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장애등급이 폐지됨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하고, 1~3급 등의 중증 장애인에게 인정된 우대혜택과 사회적 배려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기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대상은 장애 1~3등급이었지만 제도가 변경된 후 모든 등록 장애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된다. 기존에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지원 대상을 뽑는데 장애등급이 활용됐지만, 장애등급을 폐지한 후에는 장애등급 대신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가 활용된다. 이외에도 종합조사는 △거주시설 △보조기기 △응급안전 영역에 활용된다. 종합 조사 시 장애인서비스종합판정도구가 이용된다. 장애인서비스종합판정도구(이하 종합판정도구)는 △가구환경 △사회활동 △수행능력 △인지 등을 고려하며 이를 통해 장애인에게 서비스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시행된 시범사업의 결과를 활용해 종합조사에 쓰일 종합판정도구를 6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종합판정도구는 오는 7월에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에 먼저 적용된다. 이후 2020년에는 장애인 이동지원 서비스에, 2022년에는 소득 및 고용지원 서비스에 확산 적용될 예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등급제폐지를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등급제폐지를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장애등급제 폐지, 문제는 없나

일각에서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후 바뀐 정책이 여전히 장애인의 삶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여전히 의학적 기준만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등급제가 의학적 기준만을 고려해 개인이 처한 환경과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폐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올바른 정책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개인의 필요와 환경을 중점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제도가 돼야 한다”며 “중증장애인이라도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욕구가 약할 수 있고 경증장애인이라도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의 종합조사표를 통해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을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활동지원 종합조사표의 항목은 △식사하기 △옷 갈아입기 △빨래하기 등 신체 기능이 포함된 기능제한 항목이 종합조사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조사자는 이 항목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게 된다. 장애 유형에 따라 특정 행동이 힘든 이유와 힘든 정도는 다양하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은 양치하러 가는 길이 어렵지만, 발달장애인은 양치 행위에 나아가는 동기부여가 형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다. 종합조사표의 평가 기준이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을 평가하는데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장애 유형별로 종합조사표를 따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만든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조사표는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달 15일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방안 제2차 토론회에서 장애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모의적용을 거쳐 조사지침과 조사항목별 가중치 등을 개선하고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기존 내용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면 좋지만, 이 제도의 프레임이 ‘등급’에서 ‘점수’로 바뀐 이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지원 예산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의 올해 장애인 지원예산은 2조 7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000억 늘었다. 조 교수는 “예산이 작년에 비해 조금 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큼은 아니다. OECD 평균 1/4 수준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장애인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장애정도와 무능함을 증명해야 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종합조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구조는 없앨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고민과 협의, 문제 해결의 시발점

남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조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장애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형 장애인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김 변호사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진정한 욕구를 물어보는 것이 올바른 정책의 출발점”이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했다. 장애인 권리와 복지향상을 위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