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최근 베트남 분짜, 태국 똠얌꿍, 중국 마라탕 등 이색적인 외국 음식이 눈에 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에서 전체 지수는 64.20점에 그쳤으나 ‘기타 외국식 음식점업’은 3분기 연속 상승세를 그리며 82.24점을 기록했다. 이처럼 ‘에스닉 푸드(Ethnic Food)’는 외식업계에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제3세계에서 전 세계로 확장된 에스닉 푸드
음식 문화 … 타문화와 접촉·융합·교류 가장 활발한 영역


에스닉 푸드 열풍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과거 미국에서는 웰빙 바람이 불었다. 그들의 관심은 동양으로 향했고 초기 에스닉 푸드는 이러한 제3세계의 고유한 음식을 뜻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문화 전파와 더불어 식문화 교류가 이뤄지면서 에스닉 푸드의 범주는 ‘제3세계’에서 ‘전 세계’로 확장됐다. 어떤 곳이든 고유의 문화를 생산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서 이국적인 에스닉 푸드를 찾기 시작했고 20여 년 만에 에스닉 푸드 음식점을 골목마다 볼 수 있게 됐다. 에스닉 푸드 열풍의 원인에 대해 한국방송통신대 관광학과 김철원 교수는 △소비자 △판매자 △이주민 측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소비자는 해외여행, 이주, 유학과 같은 해외에서의 장·단기적 체류가 늘어나면서 현지의 생활문화를 느낄 기회가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 특히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한 정보의 확산으로 문화적 이질감이 줄어들면서 에스닉 푸드 음식점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다. 한편 현업 종사자인 30~40대 판매자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험이 기성세대보다 많다. 이들의 식당이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주민에 의한 에스닉 푸드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형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주민이 모인 장소는 같은 식문화권의 식자재와 음식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시작됐다. 이후 점차 지역사회와 교류하면서 에스닉 푸드 식당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외식업계와 더불어 식품업계도 에스닉 푸드를 상품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한 유명 치킨 브랜드는 지난해 사천요리의 대표 소스인 라유소스와 중국 흑식초를 사용한 치킨을 출시해서 한 달 만에 16만 마리를 팔았다. 또 다른 유명 식가공품 브랜드는 간편 조리 식품에 에스닉 푸드를 대입해 세계 커리 소스 제품류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김철원 교수는 “산업적으로 에스닉 푸드는 자본이 모이는 상품이 됐고 이로 인해 시장이 형성됐다”고 해석하며 “시대·환경적 변화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탈바꿈하는 음식의 일반적인 진화 양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에스닉 푸드가 시사하는 바
에스닉 푸드 시장 형성으로 많은 소비자가 외국 음식에 가까워졌지만, 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김수철 교수는 문화 지리학자 이안 쿡의 말을 빌려 “우리가 타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어도 여전히 그 안에서 타자에 대한 경계 짓기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때로 누군가에겐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타문화에 대한 조롱·편견·혐오를 일삼게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 우리 다문화 사회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수철 교수는 이러한 인식이 다문화주의의 한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논의를 이었다. 다문화주의에는 경제·정치적 한계가 있고 ‘타문화를 존중하는 개념’이 문화권 사이에 교류가 부족한 ‘단순한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된 한계도 있다. 그는 이처럼 소통이 부재한 다문화 현실은 오늘날 때때로 불거져 나오는 타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테러·폭력에 무방비 상태가 되기 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타문화 간 적극적인 상호교류를 위해서 국가 정책이나 공식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다문화 담론을 수정하는 방향도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 수준에서 작동하는 타문화 사람과의 접점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식 문화가 타문화와의 접촉·융합·교류가 가장 활발한 영역임을 고려하면 문화적 다양성에 기반을 둔 에스닉 푸드는 그 접점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따라서 김수철 교수는 “에스닉 푸드를 단순히 ‘나와 다른 문화권의 음식’이라고 여기기보다 △개인적 환경의 차별성 △주변 이주민 커뮤니티와의 관계 △한국인과의 교류 등 다양한 요소가 관여하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에스닉 푸드와 대화하기
이란 음식점 ‘페르시안 궁전’은 명륜동에서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장인 샤풀(50) 셰프는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 온 이란 출신의 유학생이었다. 그는 한양대에서 의학을 6년,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5년 공부했다. 머리를 식힐 겸 잠시 취미인 요리에 집중해보기로 했고 마침 명륜동에 권리금 없는 가게가 나왔다고 한다. 6개월간 즐기려던 취미는 그렇게 17년이 흘러 단골손님이 찾는 맛집이 됐다. 그는 당시 주변 음식점과 차별화된 두 가지 콘셉트가 손님에게 통했다고 말했다. 하나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인 이란식 커리였고, 다른 하나는 매운 단계를 설정해 손님 개개인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직접 서빙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이란은 날이 더워 음식이 짠 편이라 한국인 손님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그는 음식이 짜다는 평을 수용해 염도는 손님이 조절하게끔 따로 소금을 줬다. 나아가 반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을 위해 기본 밑반찬으로 단무지와 피클을 제공했다. 페르시안 궁전은 입구부터 인테리어가 인상 깊다. 그는 “또 다른 취미가 인테리어여서 가게를 페르시안 스타일로 직접 꾸몄다”며 “조명과 색상은 심리학적 요소를 고려해 손님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율전동에는 개업한 지 3년 된 지중해 음식점 ‘벨라 튀니지’가 있다. 가게의 얼굴 파이슬(34) 사장은 튀니지 북부 출신 셰프다. 고향에서 제과 제빵, 전통식 튀니지 요리 등을 배우고 여러 주방에서 실력을 닦았다. 관광지 근처 호텔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 한국을 알게 됐다고 한다. 수원 대학가에 자리 잡게 된 까닭은 예산상 비교적 서울보다 가게를 마련하기 수월했고,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기 때문이었다. 주방과 홀 업무 모두 혼자 부담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함”이라 말했다. 인건비를 줄이면 그만큼 재료에 신경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막상 튀니지 전통음식에 필요한 식자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다른 식당에서 일할 때 일이 없는 날이면 매주 시장에 갔다. “같은 생선이라도 모양과 색깔 심지어 맛까지 달랐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한국 재료로 튀니지 맛을 만들었다. 그는 음식 철학도 확고했다. “나의 몸 상태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음식은 요리하는 행위가 전부가 아니라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고, 가족과 손님을 위해 요리하기 때문에 그 행복이 음식에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일 요리 방식을 달리하는 데일리 메뉴를 추구하지만 치킨 타진이라는 메뉴는 항상 오븐에 굽는 방식을 택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피드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위쪽부터 샤풀 셰프, 파이슬 셰프
사진 l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김수철 교수는 위 사례와 같이 에스닉 푸드를 매개로 한 생산과 소비에서, 생산자 개인이 살아온 배경과 한국에서의 활동 및 소비자와의 소통 과정을 주목해 보면 사실 이 음식이 어느 나라 것인지, 정통성과 민족성을 대변하는지는 부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역시 식당 유지이기 때문에 음식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국의 고유성을 브랜드화해 마케팅에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철 교수는 △누가 이 음식을 만드는지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게 됐는지 △왜 이런 재료가 사용됐는지 고민해보면 에스닉 푸드를 매개로 이뤄지는 문화간 교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말을 마쳤다.

에스닉 푸드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식탁 위에 올렸다. 한 수저 뜰 때 무엇이 버무려졌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벨라 튀니지의 파이슬 셰프가 인터뷰 마지막에 건넨 말이 있다. “와서 식사만 하지 말고 어떤 질문이든 좋으니 아무거나 물어도 좋다. 난 손님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그의 말을 곱씹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