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풀무질 전경. 인물은 왼쪽부터 인수자 전범선, 고한준, 장경수 그리고 은종복 대표.
풀무질 전경. 인물은 왼쪽부터 인수자 전범선, 고한준, 장경수 그리고 은종복 대표.
사진l이민형 dlalsgud2014@


안 팔려도 같이 읽었으면 하는 좋은 책을 우선 배치
대학이 기능하지 못하는 부분의 대안으로 풀무질을 이용해주셨으면

 

지난 1월 혜화동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동네 서점이 망한다는 것에 왜 그리 호들갑인지 여러 언론이 다투어 보도했고 이는 풀무질이 단순한 동네 서점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줬다. 책방 풀무질과 은종복 대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문사회과학서점과 일꾼 은종복
1980년대 민주화의 분위기를 타고 서울에 많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이 들어섰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는 이 당시 사회과학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현실의 거점이라 말한다. 1986년 2월 우리 학교 한국철학과 부부 동문이 명륜동에 문을 연 풀무질은 단층 4.5평 남짓의 책방이었지만 민주화의 열망을 불어넣기에는 충분했다. 그 당시 명륜동에는 ‘논장’이라는 사회과학서점도 있었다.

자신을 풀무질 일꾼이라 부르는 은 대표는 세 번째 일꾼으로 1993년 4월 1일 풀무질을 인수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최루가스를 날리며 학생운동 하는 대학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던 은 대표는 1985년 문학회에 들어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학생운동에 관심이 없었지만 광주 항쟁에 대한 자료들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며 학생운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운동권 조직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데모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술과 데모 덕분에 대학을 7년 동안 다니며 학과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은 그가 책방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땐 그랬지
1990년대 중반 삐삐가 등장했다. 학생들은 삐삐에 찍어 보낸 전화를 받으러 풀무질에 오기도 했다. 은 대표가 업무용으로 쓰고 있는 전화를 학생들은 수신용으로 썼다. “사장님 전화 좀 끊어 주세요. 저한테 급하게 올 전화가 있어요.” 그런 학생 서넛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은 대표는 책방 문 가까이에 공중전화기를 놓았다. 서로 전화기를 쓰려고 소란피우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은 대표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창비 계간지 30부를 주문하면 일주일 만에 동이 나고 후배가 들어오면 선배가 책을 우르르 사주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은 대표는 “당시 성대의 공부 모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며 “정외과 같은 경우는 비교·한국·국제정치학회 세 곳이 있었는데 『전태일 평전』, 『껍데기를 벗고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의 사회과학 서적을 경쟁적으로 읽었다”고 회상했다.

1997년 2월에는 우리 학교 불교 동아리 성불회 학생이 25만 원을 은 대표에게 주면서 녹색평론사의 『오래된 미래』를 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거저 주라고 했다. 겨울에 막노동 해 모은 돈을 선뜻 후원한 것이다. 은 대표는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오래된 미래』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인근 대학교수들은 이 책을 과제도서로 선정했다. 『오래된 미래』는 풀무질에서만 몇천 부가 팔렸고 후에 알아보니 대형서점 전 매장에서 팔린 수보다 풀무질 한 곳에서 팔린 수가 더 많다고 했다.

오늘의 풀무질
2007년에 풀무질은 길 하나를 건너 이사했다. “2007년 5월 27일이었다. 강아지똥의 작가, 존경하는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열흘 뒤라 정확히 기억한다”며 은 대표는 “책방 한 곳에 놓여있는 베이지색 책장을 우리 학교 학생과 서울대 학생 열댓 명이 모여 옮겼다”고 회상했다. 풀무질 이사 후 공간은 4배 이상, 보유한 도서는 5배 이상 늘어났다. 5만 권의 책 중 수험서 5천 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다. 은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을 눈에 띄게 둔다. 녹색평론사·문예출판사·박종철출판사·비봉출판사 등 백여 곳이 넘는 출판사와 직거래를 한다는 그는 “대형서점의 도서 진열 기준은 광고가 들어오거나 잘 팔리는 책 중심이지만 풀무질은 안 팔려도 같이 읽었으면 하는 좋은 책을 먼저 배치한다”고 전했다.

서울 소재 대학마다 자리했던 40여 개 이상의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한때 대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뉴미디어가 등장하고 동네의 작은 서점이 이전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오늘날 그 당시 인문사회과학서점 중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학교 앞 ‘풀무질’과 서울대학교 앞 ‘그날이 오면’밖에 없다. 남아있던 풀무질마저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의 위기에 놓였었다. 다행히 은 대표가 풀무질을 꾸려나갈 이십 대의 젊은 청년 고한준·장경수·전범선 씨를 찾았고 6월 11일 그들에게 풀무질을 인도하기로 했다. 인수자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금껏 쌓인 풀무질의 채무를 위한 후원을 받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
편집문화실험실 장 대표는 서점이 특정한 동네에 존재한다는 물리적인 사실만으로는 동네 사람들이 자동으로 서점의 독자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현대사회에서 거리의 지속적 소멸로 인해 작은 동네 서점은 서점과 독자 사이의 강한 연결이 필요하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 풀무질은 서점과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을 위해 일곱여 개의 독서 모임과 풀무질책놀이터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은 대표는 풀무질책놀이터협동조합에 대해 “다음 달 중순에 수익사업에 용이한 일반협동조합에서 공익적 성격을 지닌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꿀 것”이라 예고했다. 그 이유로 “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봉사시간을 줄 수 있게 돼 봉사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풀무질 후원자들에게 면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장점을 밝혔다.

풀무질 인수자 고한준 씨는 풀무질의 독서 모임 확대를 위해 세 인수자의 전공을 살려 동양고전·문학·정치사상사 등의 읽기 모임을 구상하고 있다. 전범선 씨는 “국제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색깔 있는 신문인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모임도 하고 싶다”고 희망하며 “풀무질을 찾는 분이나 성대생 또한 주체가 돼 모임을 해주셔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풀무질 인수 후의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6월까지 책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명절 하루만 쉬며 매일 늦게까지 여는 지금의 방식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경수 씨는 자신이 대학 시절 가졌던 문학 모임에 비춰 독서 모임에 대한 취지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대학의 기능이 기존의 문제의식을 키워나가거나 공유하는 장이라는 방향성은 잡고 있지만 학생들의 제대로 된 문제의식 해소공간으로서는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풀무질을 이용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