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채홍 (dlcoghd231@gmail.com)
사진 l 김한샘 기자
사진 l 김한샘 기자


끊임없는 탐구가 표현의 창 열어줘
원하는 물질 만들기 위해 과학 논문도 많이 읽어

 

유체역학을 활용한 작품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미디어 작업을 많이 했다. 어두운 방에 실제 촬영한 영상이 아닌 프로그래밍 한 영상을 프로젝터로 영사해서 공간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을 다루고 싶어지더라. 2004년쯤부터 스튜디오에서 실험하면서 여러 유체를 다루다가 작품을 만들게 됐다. ‘유체역학 예술’이라는 단어를 내가 먼저 쓴 것은 아니고 주위에서 내 작품을 보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 독일에서 전시회를 개최했을 때 유체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우연히 전시를 보러 왔다가 내 작품을 보고는 자신들이 하는 시뮬레이션이랑 닮았다고 하더라. 의도한 것은 아니고 작품 활동 중 과학자들이 정보나 지식을 많이 알려주면서 오히려 더 관심을 두게 되고 많이 알게 됐다.

유체역학에 대한 지식을 따로 공부하나. 작품을 볼 때도 관련 지식이 필요한가.
논문은 많이 읽는다. 전공자처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찾아본다. 이 물질의 점성이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하면 그것만이라도 많이 찾아보게 되고 감각이나 경험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전문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엔지니어나 과학자처럼 물질에 학문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이 하는 실험은 많이 한다. 그래서 수량화된 지식은 없더라도 과학자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게 되는 것 같다. 논문에 나온 그대로 실험할 때도 있고 혼자서 해보기도 하는데 시도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된다.

관련 지식은 있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고, 없다고 불편하지도 않다. 내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 중 과학자도 많고 예술과 관련이 없는 사람도 많다. 아이들은 유체가 움직이니까 신기해하는 것 같다. 예전에 독일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독일 꼬마애가 아침에 학교 갈 때 한 번, 집에 가는 길에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전시를 보러 왔다. 토요일에는 엄마도 데리고 오더라. 이런 관객들을 보면 과학을 모른다고 작품을 못 보는 것도, 안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제작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우선 제작에 있어 첫 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고 전시장에서 위험하지 않게 다룰 수 있는 물질을 재료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에 과학 연구소에서 실험할 때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위험한 물질도 다룰 수 있었지만, 전시장에서는 작품이 사고로 깨질 수도 있고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된 대신 재료에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신기한 재료가 있으니까 이 재료로 무엇을 해볼까’가 아니라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물질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현상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연구를 한다. 몇 년 동안 매일 조금씩 다른 재료를 넣어보고 휘젓기도 하면서 지극히 감각적으로 그 세계를 찾아간다. 만들고 싶은 물질을 몇 년 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가 조금씩 실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한 물질을 만들게 되더라. 과정이 오래 걸려서 방법적으로는 보통 미술 작업 하는 작가와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과학에서 영감을 받고 과학적 지식을 공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예측하는 것인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가.
반반인 것 같다. 매 순간 일어나는 현상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제한된 상황을 만들어 두기 때문에 병에 담아둔 액체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주사위를 던질 때, 무엇이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1~6 사이의 숫자가 나온다는 것은 안다. 내가 하는 실험도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메타 물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고 들었다. 메타물질이 무엇인가.
과학적 의미의 메타 물질과 내가 생각하는 메타 물질, 이렇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재료공학에서의 메타 물질은 분자의 구조를 바꿔서 새로운 성질의 물질을 나타내게 한 물질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메타 물질은 좀 다르다. ‘Meta’라는 단어는 남의 것을 가져오지 않고 그것으로 그것을 설명한다는 재귀적 의미를 지닌다. 물질로서 물질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타 차원이 되면 언어가 예술 작품을 포획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말하는 메타 물질은 물질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물질을 다룬다는 의미다.
작품 창작에 있어서 관념적인 것을 배제하나.

관념이라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 의미는 나 자신에게만 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얘기하는 순간 그렇게만 보게 된다. 작품을 규정하고 그 세계에, 언어와 사유에 포획돼 버리면 재미가 없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작가들 작품이 많고,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나가다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이전에 그 작가에 대한 내용을 접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에 그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두 알아서 관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