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히페리온』 E.휠덜린 지음, 범우사


■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대학시절은 젊음의 낭만을 만끽하는 데에도, 졸업 후 진로를 위한 준비를 하는 데에도 열심이어야 한다. 공부만 하고 지내면 인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없을테고, 진로 준비가 없으면 졸업 후 뒤쳐진 인생을 살아야 하니 이상적인 면에서도 현실적인 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소한 한 가지의 취미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고 외적인 것들에 바쁘게 떠밀려 살다보면 자기를 잃어버리기가 쉽다. 그럴 때 자기만의 취미가 있다면 내면의 여유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 현재의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면
대학교 때 나는 공부와는 담 쌓고 지냈지만 책은 늘 가까이 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양의 고전문학을 좋아한 것이 불문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금의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때처럼 지금도 책을 읽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마음이 단순해져서 좋다. 예전에는 책이 현실로부터의 도피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추구의 대상이다. 끝도 없이 잠수하게 만드는 생명력이 책 그 자체에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이제는 문학을 조금씩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하고 싶다.


내게 있어 사람과의 만남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과의 만남에도 인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대학 4학년때 횔덜린의 『히페리온』이란 책과의 만남 때문이리라. 루소의 『고백록』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감명 깊게 읽고난 후 독일에도 루소와 비슷한 감성의 작가가 있지 않을까 하며 책을 고르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책의 후면에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삼으며 살아가는 히페리온의 회상”이라는 말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효시가 된 작품”이란 말에 읽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책을 두어 장 넘기면 “전체로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신성에 충실한 생이며, 그것이 인간의 최고의 경지이다”와 더불어 “그러나 일순 의식이 돌아오면 나는 하계로 떨어져 버린다. 분별의 세계로 돌아오면 나는 원래대로의 내가 되어 고독하게 되고 현세의 가지가지의 괴로움을 지니게 된다”란 글이 나온다. 이책에 그려진 히페리온의 벨라르민에 대한 우정과 디오티마에 대한 사랑은 40년 이상을 정신병과 싸우며 많은 시들을 써냈던 횔덜린의 삶처럼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율법과 운명의 강제는 어린이에게는 근접할 수가 없어 어린이의 내부에는 자유가 존재할 뿐이다”란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가장 강렬한 우리 내면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사려된다.

나는 나중에 몇몇의 참고문헌들을 통해 횔덜린이란 시인이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더 나아가서 서양문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작가란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횔덜린은 ‘시인의 시인’으로 평가되며 그가 프랑스의 현대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게다가 현대철학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하이데거가 횔덜린에 대한 책들을 따로 썼기에 그 중요성은 철학 쪽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게 횔덜린이란 작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이란 비평서에 횔덜린에 대한 글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블랑쇼를 끝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후에 박사논문까지 쓰게 되었을까. 블랑쇼는 내가 횔덜린의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충격에서 나를 빼내면서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시 잠수하게 만들면서 나 스스로 직접 다가가고 이해하게끔 인도해주었다. 그와 같은 스승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