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빼앗긴 얼굴』(라티파 지음) 최은희 옮김/이레/8000원

매년마다 찾아와서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지만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이나 푸른 하늘은 왠지 모를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준다.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필요할 때에서야 소중함을 깨닿게 되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아름다운 이 가을 풍경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다지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러한 풍경들을 즐길 수 없다면 어떨까. 누구의 소유도 아닌 풍경을 즐기는 권리를 빼앗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이 책『빼앗긴 얼굴』의 배경인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이 일이 간단하게 이뤄졌다. 탈레반은 아프카니스탄의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고, 밖을 공포지역으로 만듦으로써 여성들에게서 풍경을 빼앗은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국가, 아니 어쩌면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나라였다. 그렇게 이름 없는 나라이기에 일본에게 철저히 인권이 유린됐을 때에도 세계는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그 사실을 알리고, 그들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네덜란드에서 청년들이 죽었을 때마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의 여성들과 이 책의 저자인 라티파의 일이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비슷한 아픔을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프카니스탄은 지구상의 어디에 위치하는지조차 모르는 나라였으며, 그 후에도 기껏해야 빈 라덴이 숨어있던 이슬람 국가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와 아프카니스탄은 일방적으로 다른문화를 강요당하는 것조차 세계에 알릴 수 없는 이름없는 약소국이라는 ‘동병상련’의 처지이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지배당하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문화를 강요당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우리는 알고있다. 이러한 부당한 일을 세계에 알리고자 아프카니스탄의 작은 소녀 라티파는 이 글을 썼다. 그녀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16살이었고 그 순간 그녀의 모든 꿈은 무너졌다. 탈레반 정권이 강요하는 규칙은 그녀의 기자라는 꿈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규칙에 따르면 여자는 교육을 받을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라티파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 그녀의 담담한 글을 통해 우리는 ‘인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탈레반은 빈 라덴과 손을 잡았고, 빈 라덴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적이 됐다. 탈레반에 적대적인 곳에서, 그것도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일으킨 2001년 말에 이 책이 출판됐다는 사실은 이 책의 목적을 의심하게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일제치하, 우리의 고통을 그리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그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가.

임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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