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지웅배 기자 (sedation123@naver.com)

게임이론 통해 대북정책 해법 모색해
북미 외교 속 우리나라 역할 중요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비핵화에 대한 협조적 태도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끊임없는 도발을 감행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된다. 기존 정치 외교 분석에 사용되는 게임이론을 통해서 북한이 취하는 태도의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보고자 제주평화연구원의 이성우 연구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flickr 제공


외교는 게임이다
정치외교학에서 게임이론이 주로 쓰이는 이유는 게임이론의 발전 배경과 관련이 깊다. 게임이론은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 과정에서 크게 발전했다. 경쟁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특성이 정치의 성격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상황과 현재 북한과 미국의 외교 상황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론은 현재 남북 관계를 이해하는 틀로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외교 관계에서 합리적 결정을 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는 게임으로는 크게 △죄수의 딜레마 △겁쟁이 게임 △사슴사냥게임이 있다.

이 연구원에 의하면 역대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들은 현실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크게는 죄수의 딜레마로 이해가 가능하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공범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분리된 공간에 수용해 자백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1년 징역(A), 둘 다 자백하면 5년 징역에 처한다(D). 반면 둘 중의 한 명이 자백하고 다른 한 명은 자백하지 않는다면 자백한 쪽은 석방, 자백하지 않은 쪽은 10년 징역에 처하게 된다(B와C).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적 주체가 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을 따져보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죄수들은 모두 자백하게 된다. 상대가 자백했다면 10년형이 아닌 5년형을 받기 위해, 상대가 부인했다면 석방되기 위해 자백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한 번뿐이라면, 자백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가 자백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나는 자백을 하는 것이 이익이다. 이는 나와 상대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상대의 선택이 정해졌을 때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선택들의 집합을 ‘내쉬 균형’이라고 칭한다. 위의 게임에서는 둘 다 자백(D)하거나 둘 다 부인(A)하는 경우 내쉬 균형이 된다. 한편 실제로 정치를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협력의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정치적 상황에서는 ‘Tit for Tat(이하 TFT) 전략’을 사용한다. TFT 전략은 일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상대방이 이전 게임에 협조했다면 협조하고, 배신했다면 같이 배신하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정치학 전문가 로버트 액설로드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어떤 전략이 최선인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TFT 전략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낮은 형량을 의미하는 최고득점을 획득했고 최선의 전략임을 알 수 있었다”며 TFT 전략의 위상을 언급했다.

한편 이 연구원에 의하면 북한의 행보는 겁쟁이 게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겁쟁이 게임에서는 선수 A와 B가 자동차를 타고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만일 양쪽 모두 멈추지 않고 달린다면 둘 다 죽게 된다. 옆으로 피하는 쪽은 겁쟁이가 돼 체면을 잃게 된다. 둘 다 옆으로 피하면 죽음은 모면하지만 승리자도 없기 때문에 차선의 결과가 나온다. 표 <겁쟁이 게임>에서 B와C가 내쉬 균형점이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겁쟁이 게임은 북한과 미국의 핵을 이용한 기 싸움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다. 그는 “‘말 폭탄’으로 강하게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가 서로 차를 몰고 충돌하려는 상황과 마찬가지이다. 두 국가 가운데 핵전쟁이 두려워 양보하는 국가가 옆으로 피하는 차량인 것이다”라고 전했다.

겁쟁이 게임의 양상을 보이던 기존의 상황과는 달리, 최근 북한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 연구원에 의하면 북한의 최근 협조적 태도는 사슴사냥게임을 통해 이해가 가능하다. 미국과 여러 국가들에 의한 경제제재 때문에 북한의 내부적 어려움이 커졌고 더는 겁쟁이 게임을 고수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핵 실험을 진행할 군사 자금이나 통치에 필요한 자금 등 국가 운영 전반에 궁핍을 느꼈고 이에 서로 협력을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표 <사슴사냥게임>에서 북한의 상황을 살펴보면, 사슴과 토끼 중 선택을 해야 하는 북한이 혼자서 핵보유라는 토끼를 선택할 경우 혼자만 이익(B)을 보게 된다. 반면 남북한이 협력을 할 경우 사슴(A)을 잡을 수 있다. 사슴의 가치는 토끼의 두 배를 넘는다. 즉 서로의 신뢰를 전제로 함께 사슴을 잡아 반절로 나누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목표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호 협력으로 남한은 비핵화를 북한은 체제보장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실에선 동상이몽이 된 전략적 대북정책
이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북정책의 방향은 기능주의적 차원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기능주의적 접근이란 정치적 접근방식에 의한 평화유지방식과 달리, 그 밖의 경제적, 사회적 분야에서의 협력을 의미한다. 정치적 접근을 통해 북한에 비핵화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 재개방이나 쌀 지원 같은 경제적인도적 협력으로 평화적 관계를 쌓으면 정치적 평화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은 기능주의적 접근의 대표 사례다.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 죄수의 딜레마를 통한 대북 정책은 대체로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라며 대북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는 TFT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가 두 번 배신할 경우 배신하겠다’는 TF2T(Tit for 2 Tat) 전략을 활용했지만 이미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낮은 성적을 기록한 전략이었기에 실패는 예상돼 있었다. 그 결과 각종 핵실험 등 남북관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연구원은 대북정책 실패의 원인이 △남북한이 인식한 게임의 차이 △전쟁 시 받는 피해의 차이 △흡수통일 대상으로 여기는 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한의 대북정책 기본 틀이 죄수의 딜레마라면, 북한은 겁쟁이 게임으로 외교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즉 해석하는 게임이 다르니 각자의 전제로 해결방식을 가져와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겁쟁이 게임에서 두 당사자가 충돌했을 때 받게 될 피해가 같다는 전제로 게임을 고려하지만, 실제로는 남북한이 입을 피해는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산업 규모나 국가의 발전 정도를 생각해봤을 때 피해가 더 큰 쪽은 우리나라이며 이에 따른 공포가 더 크다고 봐야한다. 표를 보면 균형점은 B와C이며 우리나라가 충돌 시 북한의 두 배의 피해를 입기에 회피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D에서 B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때문에 북한은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이 상대적 열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의 접근도 북한이 경계를 세우는데 한 몫 했다. 이 연구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우리나라의 계속되는 원조에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점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 원인”이라고 답했다.

북미 외교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프로게이머
이 연구원은 북한의 태도 변화는 주로 내부적 이유에, 외부의 영향 일부가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적인 상황으로 미국이 북한의 ICBM 개발에 따라 더 이상 남북 외교 상황을 그전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경제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기간이 앞으로 30년 남았다고 봤을 때, 남은 기간 문제들을 극복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주국방을 이루는 국가를 만들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예상했다. 최근 ‘로동신문’에서 인민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식으로 보도가 자주 나가는 것도 이와 같은 의도로 풀이된다. 그 결과 한미에게 회담 제안에 협조적 태도를 보여 자금을 조달할 의도로 게임의 전환을 시도했다. 자본주의적 손길도 받아들이고자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환할 의향이 생긴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제재에 미국이 개입할 당시 효과적으로 중재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과 같이 북한의 협조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인 교류가 계속 돼야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배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겁쟁이 게임을 통해 이해해도 가능성이 낮은 얘기임을 알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차를 몰고 충돌하려고 하는 상황이지만, 실은 북한이 경차라면 미국은 대형트럭이다. 즉, 북한의 회피 가능성이 높고 다른 수단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한편 이 연구원은 “우리가 북한의 배신을 염려하는 만큼 북한도 체제유지를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배반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불안감 면에서는 체제유지를 위협 받는 북한이 더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례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과의 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왕래하는 두 국가의 국민과 각종 교류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갖는 국가라면 당연한 상황이다. 만약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라면 먼저 상대국에 있는 자국민을 데려 오는 것이 순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각종 교류가 바탕이 된다면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양국민의 왕래가 증가하여 북한의 배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즉, 우리나라는 배반에 대한 가능성에 초첨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그들이 원하는 미국 주재원의 북한 거주나, 북한에 미 제조업 공장의 설립 등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 북한에게 내부적 민심의 위협을 가했던 자본주의적인 손길이 이제는 체제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인적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다. 한 번 비핵화를 달성하게 되면 폐기시켰던 핵 공장의 경우 회생시키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가 북미 사이에서 신뢰가 유지되게끔 담보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북한도 믿고 핵 공장을 폐기시킬 수 있는 것”이라며 중간자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덧붙여 “이 점에 대한 명심과 함께 우리나라가 북한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본다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