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하영 기자 (chy7900@skkuw.com)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을 만나 연명의료결정법과 더 나아가 죽음을 성찰하는 자세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의미는.
연명의료는 어떤 새로운 의료법을 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어도 소생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다면 연명의료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즉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역할만 하는 경우에 연명의료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에게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인공호흡기를 떼어주지 않는다. 이는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로 많은 의사들이 살인죄를 질 가능성을 두려워하면서 만연해진 현상이다. 그런 의사들에게 ‘그러지 마라. 너희가 보기에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없고 환자도 더 이상 치료를 원치 않는다면, 불필요한 연명 의료를 그만둬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임종과정’의 정확한 기준이 있는지.
임종과정의 정확한 개념이나 기준은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법에 일일이 명시하려고 하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 것에 기준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설령 10가지의 증상으로 기준을 정하더라도, 또 다른 사례가 발견되면 다시 법을 개정해야 한다. 때문에 의사들도 법에만 의존하기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의 판단에 맡길 경우 환자의 상태를 오판할 위험은 없나.
일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지만 사실 오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의사들이 환자가 임종과정이라고 말한다면, 한참 전부터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에서는 의사 2명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라고 정해놓았다.

실제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의 사례를 접한 적이 있나.
동료 의사의 친척이 암에 걸려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이미 암 말기까지 진행된 상태여서 회복할 가능성이 없었고, 환자에게 사실 그대로를 전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가족들과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 중 딸과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딸이 ‘어릴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 노래 부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자 즉시 핸드폰에 노래를 녹음해줬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생각날 때마다 노래를 들으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찡하면서도 좋은 이별을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 단순히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주위 사람과 이별을 하고 삶을 마무리할 기회이기도 하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한다고 들었다.
의사들은 처음부터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이야기만을 하도록 교육받았다. 환자가 가망이 없는 상태여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힘을 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환자가 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와도 환자에게 직접 사실을 알리지 못 하는 일도 많았다. 대신 환자의 가족을 불러놓고 얘기를 했다. 가족조차 상태를 알리지 못해 환자 본인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채 사망하는 일이 허다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했다. 의사들도 더 이상 환자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상태를 정확히 설명해주고, 환자가 가족들과 죽음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법 시행을 통해 이런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불길하게 여기고 두려워한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난치병이라도 끝까지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생명을 연장한다는 좋은 측면도 있지만, 그 과정이 오래 지속되면서 ‘어쩌다가 죽는’ 사례도 증가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자기가 살아온 삶을 정리하지 못하는 큰 불행을 가져온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법으로 강행하기보다는 문화로써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세세한 부분에서 아직 허점들이 많다. 우선 서식이 너무 복잡하고 많다는 문제가 있다. 차츰 줄여나가야 한다. 또한, 환자가 의식이 없을 경우 가족이 대신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 ‘가족’의 범위가 너무 넓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의 범위도 좁힐 필요가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환자에게 물을 주거나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중단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어떤 환자에게는 물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개별 사례에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또 대상 환자가 독거노인이나 외국인일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특정인을 지목해 대신 결정하도록 하는 ‘지정대리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지목하거나 혹은 변호사에게 결정권을 위임하고자 하는 환자의 의사를 마지막까지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여전히 ‘생명 존중’과 ‘죽을 권리’의 논쟁이 뜨겁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연히 있어야 할 논쟁이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고심한 끝에 합리적인 법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연명의료결정법이 ‘생명 존중’과 대치되는 법인지는 더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이 생명을 존중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이것보다는 치료할 수 있는데도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왔는데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병원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자원이 배분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