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해빈 기자 (dpsdps@skkuw.com)

야구 팬, 청중년층에서 전 연령층으로 확대돼
응원가와 구단 이벤트, 한국만의 색 보여줘

수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2018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지난달 24일 개막했다.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 리그에는 지난해 무려 840만이 경기장을 찾으며 사상 처음으로 ‘800만 관중’ 시대가 열려 화제가 됐다. 올해는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이라 예상되는 가운데 야구의 인기 요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응원문화의 흐름을 짚어본다.  

잠실야구장이 수천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차 있다.
잠실야구장이 수천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 김한샘 기자 hansem8718@

과격하던 태동기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한국야구선수권대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막했다. 당시에는 표준적인 응원방법이 구체화돼있지 않았기 때문에 응원 ‘문화’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관중들이 주체가 돼 손뼉을 치는게 전부였으며, 경기에 열중한 팬들은 위험하고 난폭한 상황을 자주 만들었다. 민훈기 Spotv 야구 해설위원은 “초창기엔 심하게 말하면 19금이었다”며 거칠었던 야구 응원문화를 설명했다. 당시 야구팬들은 주로 청·중년층의 남성이었고 극성 열렬팬이 많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1986년 ‘해태 버스 방화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삼성이 역전패하자 흥분한 관중들이 해태 타이거즈의 구단 버스를 파손한 뒤 불을 지른 것이다. 이렇듯 초창기 야구 응원문화는 매우 거칠었으며 각 구단 팬들 사이의 경쟁 구도도 치열했다. 민 해설위원은 “아무래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정권의 불순한 의도에 지역연고제가 더해져 팬들 간의 경쟁이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각 지역에 특정 기업의 구단을 배정하는 지역연고제는 프로구단들이 지역주민들을 자연스럽게 팬층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의 시행목적과 결합하며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3S 정책은 S로 시작하는 세 단어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성(Sex)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려놓기 위해 시행됐던 우민화 정책을 일컫는다.

국제대회 성과, 불씨가 되다
거칠던 남성 팬 위주의 프로야구가 지금처럼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스포츠로 발돋움한 것은 2000년대 후반 국제대회에서의 괄목할만한 성과 덕분이었다. 2006년 WBC(World Baseball Classic) 4강 진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2009년 WBC 준우승까지 연이어 터진 승리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민 해설위원은 “극적인 게임들이 계속해서 연출됐다. 특히 올림픽은 국가대항전이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졌다. 이때부터 야구가 단순 스포츠 이상의 모두가 즐기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팬층도 넓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KBO와 각 구단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했다. 민 해설위원은 “축구의 경우 2002년 월드컵의 폭발적인 열기가 국내 프로축구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았다”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구단들의 각종 홍보와 팬서비스 등의 노력을 언급했다.

세계 속에 빛나는 한국의 응원
구단과 팬들의 노력으로 이제 야구 응원은 어엿한 하나의 문화가 됐다. 지난해 10월 ABC뉴스는 한국의 야구 응원을 록 콘서트와 같다고 표현했다. 유난히 열정적인 응원을 보고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응원문화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세계 2위 규모 프로리그 시장을 자랑하는 옆 나라 일본과는 차별화된 양상을 펼친다.

미국에서 야구는 삶에 비유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스포츠다. 관람객들은 철저히 야구 경기에 빠져서 개인적인 응원을 한다. 홈팀이 잘못하면 서슴지 않고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차분히 야구를 감상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집단적인 응원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부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노래 형식의 응원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박수치며 선수 이름을 함께 외치는 식이다. 또한 치어리더들은 주로 그라운드에서 지정된 시간에만 응원한다. 이와 다르게 한국에서는 따로 설치된 응원단상 위에 선 치어리더와 응원단장의 주도하에 경기 내내 응원이 이뤄진다. 응원단장은 앰프를 사용해 구단별, 개인 선수별 맞춤 응원가를 틀고 팬들은 곡을 외워 목청껏 따라 부른다. 양 팀 합쳐 약 30개 정도의 선수 응원가를 부른 후에야 경기가 끝나는 것이다.

응원가 외에 구단별로 독특한 응원법도 존재한다. 그중 롯데 자이언츠는 신문지와 주황색 비닐봉지를 사용한 차별화된 응원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롯데 팬들은 신문지를 찢어 둘둘 말아 응원봉을 만들고, 비닐봉지에는 바람을 넣은 뒤 머리에 쓴다. 주로 사직구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 주황 물결의 향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민 해설위원은 “많은 외국 선수들이 한국의 응원문화에 감탄한다”며 “열정적인 응원과 이기든 지든 끝까지 응원하는 긍정성에 놀란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공수교대시간에 구단에서 주최하는 사다리 타기, 관중 댄스배틀,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 등은 야구팬들의 흥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이렇듯 열정적이고 화려한 응원방식 덕분에 경기 룰은 몰라도 응원을 즐기러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두산 오재일의 홈런과 함께 황금빛 축포가 터지고 있다.
두산 오재일의 홈런과 함께 황금빛 축포가 터지고 있다.
사진 | 김한샘 기자 hansem8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