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진아 기자 (jina9609@skkuw.com)

“우주 개발이 국가적인 과제가 아니라, 스타트업으로도 도전 가능한 분야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초소형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박재필 대표의 소신은 과감한 도전으로 민간 우주 개발의 새 역사를 쓴 엘론 머스크를 연상케 한다.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에서 큐브위성 스타트업 CEO가 되기까지, 우주를 향해 쏘아올린 그의 원대한 꿈에 대해 들어봤다.

더 싸게, 더 자주 발사하는 큐브셋
민간 우주 개발 생태계 조성 필요해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초소형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만 3년차 스타트업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박 대표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 진학한 뒤 대학원 수업에서 초소형 인공위성에 대해 알게 됐다. 가로·세로 각각 10크기인 정육면체부터 가로 10, 세로 30 직육면체까지 다양한 이 위성은 흔히 ‘큐브셋(Cubesat)’이라고 불린다. 큐브셋은 1999년 미국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가 교육용으로 처음 개발했다. 제작과 발사에 수 천 억이 투입되는 고가의 대형 위성과 달리, 큐브셋은 1~2억 원의 비용으로도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위성 구조와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항공우주공학이나 천문학 등을 공부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적합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박 대표가 대학원에 있을 당시 큐브셋의 존재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주 산업이 활성화된 외국에서는 대학이나 작은 벤처기업에서도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큐브셋에 매력을 느낀 박 대표는 이를 직접 개발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201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최한 ‘초소형 인공위성 경연대회’에 출전했다. 대학생들에게 위성시스템의 설계와 제작, 시험, 발사 등 우주시스템 개발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러 대학의 팀들 가운데 박 대표가 속한 연세대 팀은 개발한 큐브셋을 실제로 우주에 발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가 개발한 위성은 지난 1월 발사돼 현재 우주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성의 설계부터 제작, 우주 유사환경 시험뿐만 아니라 발사지로의 이송과 발사관 장착까지 학생들이 모든 과정을 주도해 개발한 큐브 위성이 우주로 발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가 개발한 큐브셋은 2대의 큐브 위성을 우주 공간상에서 정렬시켜 우주망원경 기술을 검증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가 참여한 이 임무는 ‘카니발X’ 미션이었다. 카니발X 미션은 우주망원경 제작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사전에 검증하기 위한 임무였다. 박 대표는 “허블 망원경의 경우 단일위성이 곧 망원경 한 개가 되어 우주를 관측하는 기술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NASA(미항공우주국)에서 위성 2개가 망원경 하나처럼 움직이는 엑스레이(X-ray) 우주망원경을 개발하고자 했는데, 그 기술을 검증하고자 시도한 것이 카니발X 미션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큐브 위성이 기존 위성 발사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거대 위성은 발사부터 제작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 타격이 클 수 있다. 하지만 큐브 위성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자주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을 우주 공간에서 사전적으로 검증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전했다.

발사된 큐브 위성 이외에도, 그가 설립한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우주 공간에서 검증하는 초소형 인공위성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큐브셋은 작은 위성 안에 탑재체를 삽입해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검증하는 데 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파머셋(Pharmasat)’을 들 수 있다. 파머셋이란, 약 4.5kg의 작은 크기에 약물을 탑재해 지구 궤도를 도는 큐브 위성을 뜻한다. 각종 센서와 광학 시스템으로 구성된 마이크로랩이 탑재돼 우주공간에서 약물 효과를 검증한다. 실제로 2009년 미국에서는 파머셋을 발사해 우주 공간에서 효모세포의 성장과 밀도를 관찰, 지구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지구궤도를 선회하는 동안 위성과 효모가 경험하게 되는 압력·온도·가속도 등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위성체에 해당하는 ‘버스’ 부분을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와 같은 업체에서 제작하고, 검증하고자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관에서 의뢰받아 기술을 탑재한다. 이를 우주에 발사해 획득한 데이터를 지상으로 전달하는 것이 민간 큐브 위성 제작 업체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파머셋 이외에도 큐브 위성은 지구 이외의 행성을 탐사하는 엑소플래닛 미션, 태양 관측 미션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임무들은 기존의 거대 인공위성으로도 가능하지만, 박 대표는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큐브 위성이 보다 많이, 그리고 빈번히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형 위성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목적 이외에, 큐브 위성이 소행성 탐사 등에는 좁은 공간에도 침투해 관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여러 대의 큐브셋을 이용해 위성망을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편대를 구성해 뭉쳐서 우주를 관측하는 큐브 위성은 지구의 전반적인 모습을 관측해 각종 분야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유리하다. 자원 탐사, 재난 감시 및 조기 경보, 교통망 구축, 도시 개발,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큐브셋을 통해 얻은 정보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 등에 제공된다. 박 대표는 “큐브셋을 통한 위성망 구축은 기존의 위성으로는 관측상의 한계가 있는 정보들을 얻는 데 강점을 지닌다”고 말했다. 기존 위성은 궤도를 한 바퀴 돌아 원위치로 되돌아오기까지 9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위성이 궤도를 도는 동안 지구 역시 자전하기 때문에, 위성이 제자리에 돌아오고 나면 해당 원위치와 관측점이 어긋난다. 인공위성의 위치와 관측점이 일치하는 ‘재방문주기’가 돌아오기까지는 대략 15~1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는 “재방문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한계를 지닌 기존 위성과 달리, 큐브셋을 통해 위성망을 구축할 경우 주기에 구애받지 않고 동일한 관측점 상에 있는 다른 위성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위성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한 데이터는 유량 변화 파악이 중요한 수자원공사와 같은 기관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큐브셋을 통한 관측 이외에도, 관측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드론을 보내 이를 해결하는 드론망 구축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우주에 관심을 갖게 하자는 목표를 가진 박 대표는 1년간 ‘Space Idiot’이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주 1회 우주와 관련된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우주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러시아의 우주개발 역사나, 외계인의 존재 여부 등을 따져보는 주제로 라이브를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우주 개발이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국가적인 과제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박 대표는 지속 가능한 개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민간 분야의 우주 개발 참여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주 개발이라고 하면 로켓 등과 같이 거대한 기술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부품부터 시작해 신소재, 위성 등등 민간인이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릴 수 있는 분야가 우주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우주 개발이 다양한 방면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이 분야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전통적인 우주 강국에서는 산업체, 학교, 연구소의 뚜렷한 역할 배분이 이뤄진다. 학교에서는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소는 기술 고도화, 산업체는 상용화와 가치 창출을 담당한다”며 우리나라 역시 탄탄한 우주 개발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3년차 스타트업 CEO인 그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이 유망하냐는 질문이 무색할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외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고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쏘아올린 자그마한 위성이 마음껏 우주를 누비고 있는 지금, 우주를 향한 그의 발걸음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박 대표가 개발한 큐브셋.
박 대표가 개발한 큐브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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