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연수 (daleksupreme@naver.com)

기존 블랙홀 가설 뒤집은 예측 ‘호킹 복사’

블랙홀 경계에서 에너지·정보 방출돼

1967년 ‘호킹-펜로즈 특이점 정리’로 박사학위를 받고 7년 뒤, 스티븐 호킹은 ‘호킹 복사’라는 놀라운 발견을 발표하며 물리학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블랙홀이 우주의 시작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검지도 않다는 사실은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이다.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만남을 꾀한 그의 천재적인 작업을 따라가보자. 읽으면서 블랙홀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1975년에 호킹은 블랙홀이 물질을 흡수했다가 빛의 형태로 다시 내뿜는 현상을 발표했다. 호킹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이 발견은 블랙홀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무자비한 진공청소기라는 고전적인 믿음을 뒤흔들었다. 원래 블랙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검고 차가운 빈 공간으로서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조차도 블랙홀을 그와 같이 묘사했다. 하지만 호킹에 따르면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에너지가 복사되고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복사에너지는 그의 이름을 따라 ‘호킹 복사’라고 불린다. 블랙홀의 복사에너지 방출과 관련해서 호킹은 대표적인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복사에너지가 방출되는 블랙홀의 가장자리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어떤 경우에도 밖에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호킹 복사는 아직까지 관측된 바 없다. 블랙홀이 복사에너지를 내뿜는 현상은 이론상으로 추론된 결과이며 그것의 실험적 증거는 찾지 못한 상태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오정근 박사는 “호킹 복사가 너무 작은 값을 가져서 천문학적으로 관측되기 어렵다”며 “고에너지 입자로 이루어진 ‘미니 블랙홀’을 포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 역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호킹은 2016년 BBC가 주관한 한 강연에서 “사람들이 규모가 작은 미니 블랙홀을 찾으려 노력해왔지만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라며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나는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다.

블랙홀도 언젠가는 죽는다
블랙홀이 계속 에너지를 내뿜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블랙홀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과 달리 호킹은 블랙홀도 결국에 죽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킹 복사의 발견을 ‘블랙홀 증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은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차차 질량을 잃고 증발한다. 등가원리에 따라 모든 것은 질량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지니는데, 블랙홀도 에너지를 내뿜으면서 질량을 잃기 때문이다. 물론 입자가 하나씩 빠져나오는 격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증발 속도가 아주 느리다. 하지만 블랙홀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속도가 서서히 빨라져 결국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증발한다. 블랙홀의 크기는 사건의 지평선 반경에 의해 결정되는데, 가장 큰 블랙홀의 경우 이런 과정을 거쳐 증발하는 데에만 무려 10의 100제곱 년이 소요된다. 이는 너무 긴 시간이어서 블랙홀이 증발한 무렵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아 아무도 볼 수 없다. 한편 호킹의 블랙홀 이론은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바로 ‘블랙홀 정보 역설’이다.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나서 복사에너지 형태로 다시 빠져나올 때, 그 물질은 원래의 정보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이다. 이렇게 물질이 에너지로 복사될 때 정보가 소실되는 반면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질량은 그대로 보존된다. 바로 이 점에서 호킹의 이론은 모순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백과사전 한 권이 블랙홀 속으로 들어갔다가 복사로 인해 다시 방출된다면, 그 복사에너지는 백과사전의 질량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에 담긴 내용, 즉 ‘정보’는 복사에너지에 들어있지 않다. 이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보가 보존돼야 한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법칙에 위배된다. 이에 호킹은 블랙홀이 양자역학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예외현상'이므로 양자역학 이론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자역학계는 그의 주장에 거세게 반박했으며, 호킹의 이론으로 인해 발생한 정보 역설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연구가 이어졌다.

블랙홀에 갇혀도 포기하지 말라
2004년 7월 21일에 열린 ‘제17차 일반상대성이론과 중력에 관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호킹은 스스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며 기존 이론에 상반된 내용을 제시했다. 그는 이론을 수정하며 블랙홀 속에서 물질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며 블랙홀은 물질의 정보를 조금씩 방출한다고 밝혔다. 그로써 호킹은 정보 역설 문제에 있어서 양자원리에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입장을 30년 만에 철회했다. 그는 1997년에 블랙홀에서 정보가 탈출하는지 여부를 두고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과 백과사전을 건 내기를 했는데, 당시 이론을 수정하면서 내기의 패배를 시인하고 프레스킬에게 야구 백과사전을 선물했다. 이후 2015년 8월에 이르러 호킹은 다시 한번 새로운 이론을 제기했다. 물질이 사건의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물질의 정보가 블랙홀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흔적으로 보존된 정보는 복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호킹 복사와 함께 빠져나온다. 하지만 호킹은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정보가 혼란스럽고 쓸모없는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마치 다 타버려 재만 남은 백과사전처럼 정보로서의 제 기능을 모조리 잃는다고 설명했다. 정보의 방출과 관련해 그는 2015년에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블랙홀 안에 있는 것 같아도 포기하지 말라”며 “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조언을 남겼다. 이렇게 크게 두 번에 걸쳐 수정된 호킹의 블랙홀 이론은 호킹 복사가 관측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호킹의 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론의 유력한 연결고리로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