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김세린박채린한도희 선수

기자명 최하영 기자 (chy7900@skkuw.com)

평창올림픽에서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거세게 휘몰아치는 여론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여느 스무 살처럼 웃고 떠들며 친구가 됐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박채린, 한도희 선수를 직접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세린 선수에게는 서면으로 물었다.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남북단일팀 결성 소식은 어떻게 알았나. 심정은 어땠는지.
박: 지난해 여름쯤 남북단일팀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가 다시 흐지부지됐어요. 그래서 그냥 아닌가 보다 했었죠. 그런데 올해 초에 다시 추진 중이라고 하더니 올림픽 한 달 전에 남북단일팀 결성 확정이라는 뉴스가 딱 뜨더라고요. 많이 당황스러웠죠. 한창 올림픽 준비 중일 때였으니까요.

한: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남북단일팀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어요. 그냥 믿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팀원들끼리 만든 단톡방에서도 아주 난리였죠. 솔직히 아주 반가운 심정은 아니었어요. 이제 와서 합류한다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의 훈련이나 경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남북단일팀이 함께 훈련할 기간이 3주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이 기간이 충분한 것인가.
박: 전혀 충분하지 않죠.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단 한 명이라도 뒤처지게 되면 전체가 어긋나게 돼 있어요. 북한 선수들과 남한 선수들의 아이스하키 방식이나 성향이 조금씩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겨우 몇 주의 시간으로 남한 선수들끼리 4년 동안 맞춰온 과정을 북한 선수들이 따라오기 힘든 건 당연해요.

한: 북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 할수록 부족한 점이 더 느껴졌어요. 그런데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것보다 훈련 기간이 부족했던 게 가장 안타까워요.

이번 남북단일팀 결성 절차에 있어 미흡했던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사전에 아이스하키 선수들과 논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팀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렸으니까요. 

박: 남북단일팀을 결성한다는 소식을 적어도 반년 전에는 알려줬어야 해요. 미리 알려주셨다면 서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또 함께 훈련하는 기간도 더 늘었을 거예요. 이번에는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진행된 것 같아요.

경기에서 북한 선수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김: 솔직히 팀 전력이 더 좋아졌다고 말하긴 어렵죠. 그렇지만 북한 선수들의 기본기가 워낙 탄탄하고 아이스하키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큰 실수 없이 경기를 할 수 있었어요. 

박: 기존의 선수들끼리 훈련하던 방식이 있어서 초반에는 조금 ‘삐그덕’거렸어요. 북한 선수들이 저희가 훈련하던 방식에 맞추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각 선수들의 포지션을 잘 조절하셔서 배치해주신 덕도 커요.

북한 선수들과 소통은 잘 되었는지. 불편함은 없었나.
김: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비슷한 부분이 꽤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는데 아이스하키를 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서로 너무 다르더라고요. 일일이 다 설명해 주는 게 힘들었어요. 

박: 남한에서는 스포츠 관련 용어가 대부분 영어인 데 반해 북한은 순우리말을 써요. 예를 들어 ‘디펜스’는 ‘방어수’, ‘골리’는 ‘문지기’ 이렇게요. 같은 팀끼리 소통이 돼야 하니까 저희도 공부를 많이 했고 북한 선수들도 영어를 배웠죠. 남한과 북한의 아이스하키 용어가 나란히 적힌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외웠어요.

한: 평상시에 북한 선수들이랑 말이 잘 통한다는 게 저희도 신기했어요. 수다 떠는 것도 엄청 재밌었거든요. 그냥 사투리 쓰는 친구 같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박: 한일전이죠. 일단 저희 팀의 첫 골이 터진 경기이기도 하고 서로 호흡이 가장 잘 맞았어요. 이건 진짜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죠. 분위기도 다른 때보다 훨씬 좋았고…. 결국 졌지만요. (웃음)
한: 한일전에 대한 의지는 북한 선수나 남한 선수나 같았어요. 모든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경기에 달려들었죠.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던 모습이 아직 생생해요.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이 남북단일팀으로 결성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워졌다. 체감하고 있는지.

김: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신 건 처음이라 부담감도 컸고 경기 때 긴장도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도 남북단일팀에 대해 묻는 분들이 많았고, 한동안 뜨거운 얘깃거리였던 것 같아요. 다만 그동안 저희의 노력과는 별개로 생긴 관심이라 살짝 아쉽기도 해요.

박: 경기장에 그렇게 많은 관중들이 온건 처음이었어요. 응원 소리가 너무 커서 저희끼리 대화가 잘 안 들릴 정도였죠. 정말 기뻤고, 감사했어요.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이 늘었고요. 이 관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죠.

한: 북한 응원단이 인상 깊었어요. 경기장 내 분위기를 거의 압도했죠. 저한테 사인받으려고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적응도 안 되고 놀라서 손사래 쳤던 기억이 나요. 주변 반응이야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은 저보다 더 난리에요. 

북한 선수들과 헤어질 때의 상황과 심정이 궁금하다.
박: 헤어지는 날 북한 선수들이 타고 갈 버스 앞에서 작별 인사를 했어요. 북한 선수들이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는데… 기약 없는 약속이라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다들 정말 많이 울었고 헤어지기가 싫었어요. 짧은 기간이었는데 서로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한: 아직도 매일 집에서 북한 선수들과 헤어질 때 찍은 동영상을 봐요. 사실 북한 선수들도 스스로 원해서 여기 온 건 아니잖아요. 다들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왔다가 다시 떠나는데, 정말 가족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그때 헤어지는 시간이 채 5분이 안 됐거든요. 인사조차 제대로 못 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올림픽 끝났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박: 친구랑 둘이서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더 쉬고 싶었는데 대학이 개강을 해서…. 지금은 그냥 학교 다니고 있어요.

한: 아직 세계선수권대회가 남아있어서 간간히 운동하며 대비를 하고 있어요.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야 마음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수들에게 있어 남북단일팀의 의미는.
김: 처음에는 막연히 북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다가가기가 어렵고 무섭기도 했어요. 하지만 같이 밥 먹고, 운동하고 나니 금세 언니, 친구가 돼서 잘 어울려 지냈던 것 같아요.

박: 언론에서는 남북단일팀이 정치나 남북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사실 저희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수다를 떨고 그렇게 친구가 됐던 기억밖에 없어요.

한: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북한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웃고 떠들고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요. 지금도 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