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근대철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를 연구하지 않고 철학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대 철학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의 기본적인 토대인 토막글들에 대한 제대로 된 우리말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에 한국철학사상연구회(회장:이병창, 이하:한철연)의 고대철학분과에서는 3년 전부터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즉 아낙시만드로스를 비롯해 엘레아학파와 데모크리토스에 이르기까지 조예가 가능한 토막글 번역작업을 수행해왔다. 지난 8일 오전 10시부터 숭실대학교 중소기업센터 309에서 개최된 제21회 한철연 학술발표회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그간의 연구성과를 정리,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
먼저 건국대 김성민 강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발표회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주제로 정암학당 김인곤 박사가 논의의 서두를 열었다. 우주와 자연세계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를 한 아낙시만드로스는 그의 풍부한 사고 편력을 알려주는 자료들이 극히 적어 이 철학가를 다룰 때는 문서적 문제가 중요하다. 이에 김박사는 논문을 통해 아낙시만드로스의 유일한 토막글을 아페이론에 한정해서 해석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들이 갖는 자료로서의 가치와 테오프라스토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오해의 일단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논평한 서울대 김남두 교수는 “김박사의 연구가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일원론적 입장으로 논의한 것은 보다 본격적인 해석으로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지만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발표되는 주제라는 점에서 우리의 연구수준을 단번에 높여주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는 논의
이어진 발표에서는 서울대 강철웅 강사가 ‘파르메니데스에서 노에인과 레게인’에 대해 원전을 해석하며 기존의 통념을 수정하는 논의를 펼쳤다. 흔히 ‘감각을 거부하고 이성의 손을 들어준’ 철학자로 간주되는 파르메니데스를 분석함에 있어 강강사는 현존 텍스트 B6과 B7을 분석하고 여러 예를 적시했다. 그는 “이 구절들에서 감각 일반의 거부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들이 파르메니데스 이해에서 주류를 형성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와 정작 그 구절들에서 파르메니데스 자신이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따져봤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경희대 최화 교수는 “파르메니데스가 모든 감각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주장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것으로, 이것은 결코 논변으로 증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본교 김주일 강사는 ‘엘레아 학파의 전승과 성립’이라는 제목으로 파르메니데스를 선두로 하여 제논과 멜리소스로 이어지는 엘레아 학파에 대하여 살펴봤다.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크세노파네스를 제외하면 엘레아 학파의 서두는 파르메니데스이므로 발표문에서는 그의 일원론을 비롯하여 대변자 제논, 멜리소스와 원자론자들을 차례로 살폈다. 김강사는 “이 논문이 술어적 입장에서 파르메니데스와 그 이후의 철학을 해석하는 완결된 입장일 수는 없다”며 “이런 시도 자체가 희랍의 철학사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문적 논쟁은 이제부터
한편 오후부터 다시 이어진 2부 발표회는 본교 이현구 박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터토론대 주은영 연구원의 ‘엠페도클레스의 4뿌리’논문발표가 그 시작이었다. 또한 △서울대 양호영 박사과정 연구원이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본교 이기백 박사가‘필를라오스의 세가지 근본원리들과 수’에 대해 △방송대 이정호 교수가 ‘데모크리토스의 인식문제 관련 토막글 연구’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번 학술발표회에 대해 한철연 초대회장인 이정호 교수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직접적인 책이 별로 남아있지 않으므로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증언자들의 여러 가지 문헌을 비교·분석 해야한다”며 “한철연의 우리말 번역연구는 이에 대한 종합적 첫 작업으로서의 의의를 가지나 연구단계로 볼 때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교수의 지적대로 이번 학술발표회를 통해 원전의 번역작업이 이제 논의된 만큼 학문적인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시점으로 우리 학계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철학이 활발히 논의되어 철학의 기본이 확실히 다져지기를 기대해본다.
조은정 기자
ejcho@mail.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