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7월 중순 즈음 나는 사할린에 잠시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여행이지만, 마음먹고 나니 바빠졌다. 그때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 섬』이라는 여행기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준비 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시베리아, 특히 사할린에 대한 현지 실태조사 보고서에 가깝다. 시베리아와 사할린은 그 시절 러시아의 새로운 개척지였으며, 당대의 작가들은 낯선 변방에서 창작의 활력을 새로 얻는 꿈을 꾸곤 했다. 체호프도 심기일전을 위해 사모했던 조국의 변방으로 떠난다고 적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새 활력을 줄 변방의 개척지란 실은 참혹한 유형(流刑)의 땅이었다. 사할린에 당도하자마자 체호프는 끝없는 굶주림을 이겨내고 사나운 자연환경에 맞서야 하는 가혹한 강제노동의 실태를 목격한다. 작가가 인간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에 따라 변방의 개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나는 왜 사할린에 가게 되었을까. 십여 년 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의 일이다. 어쩌다 나는 연변의 한 대학에서 만주의 한인 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하도록 요청받게 되었다. 이른바 '극동'에 대한 관심이 싹튼 첫 계기이다. 만주와 한반도가 담긴 지도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이 낯선 지역을 익히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난다.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변방이자 극동인 만주에 한번 관심이 쏠리자 아시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러시아가 거점 도시로 선택한 하얼빈에도 호기심이 동했다. 여러 문학 연구자들과 함께 북만주에 위치한 이 역사적인 도시에 갔을 때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송두리째 알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20세기 전후 동아시아가 격동의 장이었음을 만주에서 확인한 경험이 없었다면, 사할린은 애초부터 여행의 목록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할린이 궁금했다. 아시아 대륙의 끝에 외지게 놓여 있는 이 큰 섬은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비록 체호프는 인도주의적 정책을 촉구했지만, 그 역시 아시아 개척이라는 러시아의 꿈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편을 찾은 러시아 사람이다. 내게 사할린은 길랴크인과 아이누인의 오랜 삶의 터전이자 러시아와 일본이 식민지 개척을 놓고 영토 분쟁을 벌인 장소이며, 강제 징용당한 한인들이 귀국하지 못한 채 한을 품고 눈 감은 섬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나는 주로 사할린의 중심 도시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 머물렀다.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된 이 계획도시는 길 감각 없는 나 같은 이도 쉽게 오고 갈 수 있을 만큼 단순했다. 매일 나는 느릿하게 도시를 걸어 다녔다. 7월의 사할린은 햇살이 찬란했다. 공기는 서늘한 기운을 품었다. 서울의 무더위에 염오를 느끼던 나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기후였다. 내 눈에 들어온 사할린의 첫 장면은 인종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러시아인이 다수이며 한인이 두 번째로 많다지만, 이 변방의 땅에는 내가 가본 다른 어느 지역에서보다 다양한 얼굴들이 섞여 살고 있었다. 그들이 터득한 공존의 방법은 무엇일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서 산책하는 젊은 부부나 만삭의 여성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나이 든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 살다 보니 젊은 사할린의 풍경이 생소했다. 삶이 바뀌자 나의 눈도 바뀐 것이다.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듯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가만히 움직였다. 라오스인들만큼이나 조용한 사람들이다. 석유와 가스 덕에 실업률이 매우 낮고 경제는 활황이라더니 과연 유즈노사할린스크는 조용한 활기로 가득했다. 새로 들어서는 수많은 건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버스에서 훔쳐본 희고 앳된 얼굴의 안내양은 도시의 활기와는 무관해 보였다. 몹시 마른 몸에 낡은 티를 걸친 소녀는 아무렇게나 앉아 실의에 찬 눈을 허공에 붙박았다. 자신은 이 공간에 없다는 듯 굴었던 소녀의 얼굴이며 태도가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의 소년소녀들도 이런 눈을 하고 있는가. 내가 앞으로 사할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탐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녀의 눈 때문일 터이다. 그것은 사할린의 어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말하는가. 기억이 뭉그러지고 흩어져 다른 모양을 갖추기 전에 나는 의식적으로 긴장의 끈을 붙들면서 사할린에 대해 더 알아보려 한다. 그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삶을, 혹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더 알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김미란 교수
(학부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