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 학교의 정문에서부터 강의실들이 있는 각 건물까지 올라가다 보면, 문득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느껴지곤 한다. 정문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호암관까지 가볍게 오르고 있는데, 대성로의 나무들은 무언가 허전하게 느껴지고 공기는 쌀쌀하기만 하다. 겨울은 눈 깜빡하듯이 지나가고 어느덧 겨울이 다가온 것 같다. 추워져서 집에만 콕 박혀있기 전에, 졸업하기 전에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요즘이다.

500년 넘는 조선의 중심은 단연 한양이었고, 그간의 역사에서 한양의 중심은 단연 종로였다. 우리 학교는 이렇게 과거와 오늘을 잇고 있는 종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돌아다니기가 너무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이미 다 알고 있을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무심코 지나갔을지도 모를, 가볍게 돌아다니면서 알아두면 쓸모없는 듯 있는, 우리 성균관대의 주변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학교에서 바라보면 성북구 방향으로 우뚝 솟아있는 아남아파트다. 아남아파트 자리는 예전에 ‘수도의과대학’이 있었는데, 이는 현재 고려대학교 의대의 전신이다. 고려대가 저곳을 인수·합병하면서 1970년대에 의대를 갖춘 것에 비해, 우리 학교는 정문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수도의과대학을 두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의대를 갖춘 것을 보면, 1970년대에 왜 우리학교는 의대 설립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나, 그리고 이런 의문을 왜 인문학도인 내가 품고 있나 하는 잡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대학로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인접한 종합대학은 우리 학교이기에 간혹 대학로의 대학이 우리 성균관대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분들도 있지만, 본래 ‘대학로’의 대학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동숭동에 위치했던 서울대학교와 그 전신 중 일부로 볼 수 있는 경성제국대학을 의미한다.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역시 그 명칭의 근원은 경성제국대학 시기 일본인 교수가 심었던 나무들을 마로니에로 부른 것에서부터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괜히 대학로가 서울대 것 같지만, 괜히 기죽을 필요는 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 또한 성균관과 반촌(泮村), 그리고 그 주변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

다음은 가까운 혜화동 로터리를 살펴보자. 이곳에는 역사적 사건도 있었는데, 혜화동 로터리는 해방 후 좌우합작을 전개했던 중도파 인물인 몽양 여운형 선생이 피살된 현장이었다. 또한 4·19혁명 이후 의원내각제에서 총리를 역임했던 장면이 살았던, 로터리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학우들은 익숙할 수도 있는 안내음인 ‘장면 총리 가옥’이 로터리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로터리에서 한성대 입구 방향으로 올라가게 되면 동성중고 옆에 성당을 볼 수 있는데, 이 성당도 일제시기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한성대와 성신여대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알리는 판과 함께 혜화문을 볼 수 있다. 혜화문은 한양의 4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일제시기 중에 헐려서 지금의 혜화문은 예전의 혜화문과 위치와 양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참고로 혜화동의 혜화가 이 혜화문에서 나온 것은 뻔한 사실.

이 밖에도 우리 학교 주변에는 가볍게 산책하면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곳들이 참 많다. 더 추워지기 전에, 먼 곳보다는 먼저 학교 주변을 돌아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추천한다.

이상은(사학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