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헬조선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힘겨운 취직 상황, 어려운 경제 상황,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보편적 불안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상당히 공감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얘기하기가 조금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Ⅰ유은진 기자 qwertys@
중국고전가운데 즐거움(樂)을 언급하는 작품은 상당히 많습니다. 유가(儒家)의 경전인 《논어(論語)》는 첫 구절에서 「배우고 정해진 시기를 따라 공부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먼 곳에서 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다른 사람들이 나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학문과 즐거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접했던 문구이지만 얼마 전에 문득 왜 논어 첫 구절에 이 내용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문적인 해답은 뒤로하고 저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너무 힘든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자와 그 제자들은 논어라는 경전의 첫 머리에 즐거움과 공부를 연결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가(儒家)에서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간주되는 군자가 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바로 다른 사람이 나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과연 누가 평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화내지 않는 이 상태를 진정한 즐거움을 찾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어떻든 진정한 즐거움을 찾았으니 굳이 남의 시선이나 평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도가(道家)의 경전인 《장자(莊子)》에서 언급하는 즐거움은 다소 성격을 달리합니다. 《장자·지락(至樂)》에서 장자는 세상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지극한 즐거움은 일반인이 기대하는 즐거움의 조건인 부귀(富貴)나 장수(長壽) 등을 획득함으로써 얻을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필자가 《논어》와 《장자》의 즐거움에 대한 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서로 다른 가치관에 따라 즐거움을 바라보는 태도도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기우(杞憂)이겠지만 요즘 우리 모두는 즐거움을 너무 단일한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즐거움에 대해 장자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현실을 보다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장자의 생각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삶의 가치를 세상에서 정의하는 단일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세상도 달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의 즐거움을 찾고 그것을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음을 믿습니다. 문제는 그 깨달음이 지속되는 시간이 종종 매우 짧고, 자연스럽게 또 다시 현실을 어렵게 인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 개의 점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듯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는 순간순간이 모여 인생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축적되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주어진 인생길을 희망을 갖고 끝까지 가보는 것이겠지요! 저명한 중국현대문학가인 노신(魯迅)은 《고향(故鄕)》에서 「희망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땅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는데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삶에 있어 희망(즐거움)은 원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길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즐겁게 살자! 그리고 내 인생의 끝까지 희망을 갖고 가보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호 교수
중어중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