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아영 기자 (kay8949@skkuw.com)

늦은 밤 서울역 역사 안을 걸어가는 누군가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벽 한쪽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을 보며 ‘왜 저기서 저러고 있지’ ‘무섭다’ ‘더럽다’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그들을 지나친다. 우리 사회의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누군가일 것이리라. 그런데 노숙인들을 마냥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등한시해도 되는 것일까? 그들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눈길이 필요하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우리나라의 노숙인 현황

보건복지부의 ‘2017년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노숙인 규모는 1만 1901명이며 서울에는 전국 노숙인의 35.4%에 해당하는 4481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숙인 문제는 IMF 경제위기가 발생한 1997년 후반부터 실업자의 증가와 함께 급격히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식적인 노숙인으로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 노숙인’ △주거로서 적절성이 낮은 ‘쪽방에서 생활하는 노숙인’까지를 노숙인의 범주로 보고 있다.

탈(脫)노숙의 어려움

노숙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숙이 ‘만성화’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서울연구원의 ‘노숙 진입서 탈출까지 경로 분석과 정책과제’에 의하면 시설 입·퇴소를 반복하며 생활하고 있는 만성적 노숙인은 전체 노숙인의 최소 10%에서 최대 22%에 해당한다.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김소영 박사는 “거리 노숙인들이 시설, 고시원, 쪽방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다가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회전문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라며 한 번 노숙을 경험한 개인이 자력으로 탈노숙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 생활을 벗어나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로 현재 노숙인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 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노숙인은 일을 해서 자립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특별자활사업’, ‘일자리 갖기 사업’과 같은 공공일자리는 고용 기간이 3~6개월로 한시적이고 급여도 각각 월평균 44만 원, 120만 원이다. 이는 올해 최저시급에 따라 벌 수 있는 월급 135만 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김 박사는 교통비, 주거비 등의 생활비로 지출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노숙인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돈은 자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노숙인들 중에는 삶의 목적과 희망이 없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정신적 여력이 되는 사람의 수도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숙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노숙인들의 효과적인 탈노숙을 위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까. 김 박사는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지원 확대 △사전 예방적 차원의 접근 △부정적 인식 제고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서울연구원에 의하면 시설 노숙인과 탈 노숙인 가운데 85.5%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임시주거비 지원사업의 경우 주거유지 비율이 2014년 86.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노숙자들이 대부분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거의 질이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가출청소년과 보육원 같은 보호시설을 퇴소한 아동들의 경우 노숙인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Chamberlain and Johnson(2011)의 ‘Pathways into Adult Homelessness’ 연구에 따르면 성인노숙의 원인 중 청소년기의 가출이 3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노숙인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어 두 문제 사이의 긴밀한 연계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는 노숙인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숙인들이 근로 의욕이 있음에도 사회적 원인으로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있다”라며 노숙인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덧붙여 노숙인도 인간의 기본적 삶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중심의 사회복지를 통해서 노숙인들이 가능한 한 빨리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프로그램의 증가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노숙인들

이렇듯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지만, 우리 사회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노숙인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서울시를 중심으로 △공공일자리 및 민간 일자리 지원 △무료 진료소 △정신과 상담을 운영하며 노숙인들의 재활 및 자활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노숙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희망을 북돋워 줄 수 있는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올해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의 참여 규모를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인 3200명으로 확대했고 인문학 강좌, 동아리 활동, 예술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부터 노숙인에게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제공하는 ‘희망아카데미’와 밴드, 합창, 난타, 국악 등 음악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노숙인 예술학교 프로그램이 있다. 김 박사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왔던 노숙인들에게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접촉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문화 활동을 통해 노숙인들이 치유를 경험하고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