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1

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불이 꺼진다. 영화가 시작된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신비한 분위기의 음악 시작이라는 자막이 뜬다. “자동차 룸미러에 가족사진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30대의 아빠 윤이 딸아이 온유와 함께 밤길 드라이브 중이다”라는 해설이 해당 화면과 함께 나온다. 아이가 흥얼대는 콧노래는 ‘(온유)♪흐흐흐흐~ 흠흐흐~’라는 자막으로 처리된다.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버전이다.

누군가는 영화의 아름다운 비주얼과 웅장한 사운드에 감탄하지만, 시·청각 장애인에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영화 이해를 방해하는 하나의 장벽이다. 배리어프리영화는 영화를 둘러싼 장벽을 허물고 누구나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본래 배리어프리(barrier-free)란 휠체어를 탄 고령자나 장애인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편하게 살게 하자는 취지로 건축분야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건축·공공시설 외에도 제도적 장벽을 비롯해 각종 차별과 편견, 마음의 벽까지 허물자는 의미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배리어프리영화는 한글 자막과 내레이션을 통해 장면을 생생히 묘사해 누구나 신체적인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된 영화다. 즉 청각적 요소를 시각적 요소로, 시각적 요소를 청각적 요소로 변환시켜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거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배리어프리영화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05년 <댄서의 순정>이 국내 최초의 배리어프리영화이며, 2011년 <블라인드>의 배리어프리버전이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어 2012년에 <달팽이의 별>이 일반버전과 배리어프리버전을 동시 개봉했다. 올해는 △국제시장 △쎄시봉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연평해전 등 20여 편의 배리어프리버전이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배리어프리영화는 약 170편 정도이다. 매년 점점 더 많은 영화가 배리어프리버전으로도 만들어지는 추세이다.
늘어나는 제작 편수만큼 배리어프리영화 상영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CGV는 매달 셋째 주 화, 목, 토를 ‘장애인 영화 관람데이’로, 메가박스는 올해 11월부터 매달 첫째 주 목요일 ‘메가박스 공감데이’로 정하고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한다. 이에 따라 전국 40여 곳의 극장에서 배리어프리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CBS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공동으로 배리어프리영화를 라디오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보는 영화’를 제작·방송하고 있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토요 배리어프리 영화관’도 열린다. CJ E&M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VOD서비스로 제공되어 집 안방에서도 배리어프리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올해 10월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총 10개국 12편의 배리어프리영화가 상영됐다.
하지만 아직 일반 영화에 비해 제작이나 상영 환경이 열악한 실정이다. 매년 국내에서는 700여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이에 비하면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제작되는 영화는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점차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배리어프리영화의 상영관 수도 적다. 관계자들은 비용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현실적으로 시청각 장애인과 그 가족들, 복지 분야 종사자로 관객층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리어프리영화는 감독이 연출에, 유명 배우나 성우가 화면 해설에 참여해 일반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리어프리영화는 시·청각 장애인만을 위한 영화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한국농아인협회의 서하나 관계자는 “제작 편수 증가뿐 아니라 보다 많은 상영관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편성될 필요가 있다”며 “배리어프리영화는 장애인만 보는 영화라는 인식이 개선되어야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9일부터 시네마테크 KOFA에서 ‘제5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가 개최된다. 이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4일에 걸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올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제작한 모든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제에 방문해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배리어프리영화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