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윤수진(약학 99) 동문

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하면 바로 떠오르는 말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는 알려고 하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어렵고 복잡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윤수진(약학 99) 동문은 우리와 멀게만 느껴지는 의학·약학적 지식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녀의 직업은 바로 메디컬라이터(Medical Writ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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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내가 약대생이라니

윤 동문의 약대 진학은 사실 원하던 공대에 떨어졌기 때문에 내렸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점수대에 맞는 약대와 교대를 놓고, 약사가 되면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여중여고를 졸업했으니 대학만큼은 꼭 공학으로 가고 싶었죠. 당시 남녀공학 약대는 성대밖에 없더라고요. 마침 집도 근처였고요.” 이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약대이니 공부에 흥미가 없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리출석도 많이 하고 심지어 몇몇 과목은 아예 시험까지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나중에 교수님께 가서 빌고 따로 시험을 봤죠.” 학교생활에도, 수업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윤 동문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졸업 때까지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만 들어야하는 게 싫었고, 매일 외워야 하는 시험도 힘들었다. 공대에 가고 싶어 입시에도 다시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대신 윤 동문은 관심 있던 금속학, 화학 관련 과목을 자주 청강했다. 나중에는 그 과 학우들에게 노트까지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전공은 재수강도 몇 번 하고 F를 받기도 했다. “학점은 최소 3점만 넘기자 했어요. 공부 안 했던 것에 비하면 꽤 만족할 만한 성적이죠.”
이러던 중 윤 동문이 마음을 붙인 활동은 바로 ‘도서관 코디네이터’였다. 지금 도서관학생위원회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는 전공 교양서적을 선정하는데 전공생의 도움을 받아보고자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하지만 이보다는 당시 막 도입된 좌석 배정 시스템을 홍보하거나 정돈 캠페인 등이 주된 활동이 되었다. “그 때는 ‘컵차기’라고 도서관에서 우유팩으로 제기차기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자리 맡아놓기도 심했고요. 이런 문제들 관련해서 캠페인 등을 주로 했죠.” 윤 동문은 이렇게 도서관 코디네이터 1기가 됐고, 과 건물보단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첫 멤버라 하고 싶은 대로 모두 시도해 볼 수 있었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활동을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이 활동을 시작한 2학년부터 졸업까지 도서관 코디네이터는 윤 동문의 대학 생활에서 핵심이 되었다.

내게 딱 맞는 옷은 무엇일까

대학 졸업 후 윤 동문은 첫 직장에서 정신과 의약품 영업을 했다. “매일매일 출근이 마치 여행하는 느낌이었어요.” 매일 정신과를 드나들면서 수많은 정신질환자를 만나다보니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이후 오랜 고민 끝에 마케팅 부서로 옮겼다. 재미는 있었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옷 같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당시 ‘다음’에서 칼럼을 쓰고 있던 윤 동문은 글 쓰는 것이 재밌었고 그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그냥 무작정 글이 쓰고 싶었어요. 이런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만 했죠.” 그 때 한 선배가 윤 동문에게 우리나라에 몇 명 없긴 하지만 메디컬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다고 알려줬고, 그 선배의 소개로 관련 회사에 입사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 하던 일은 저널 편집, 의약품 브로셔 작업, 의료 관련 문서 번역 정도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2~3개월 전 업데이트 된 자료를 최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터넷도 잘 구축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하고 10년 이상 지나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업계 내에서는 메디컬라이터를 메디컬커뮤니케이터(Medical Communicator)로 이름을 바꿔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글에만 국한되지 않고 SNS, 블로그, 동영상, 인터넷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들, 의료업계 종사자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윤 동문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도 바로 소통과 이해이다. “약 관련 정보가 워낙에 학술적이잖아요. 그런데 이걸 쉽고 깔끔하게 바꿔버리면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당시에는 이런 노력이 너무 부족했죠.” 윤 동문은 대학 시절 전공 수업에서 마구 쏟아지는 전문 용어들이 너무나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한 정보를 의학·약학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바로 윤 동문의 목표이다.

엄마는 약선생

윤 동문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어렵지 않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겠죠.” 많은 워킹맘이 그렇듯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윤 동문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었다. 작은 아이 출산 후 휴가 기간에 집에 있을 때 큰 아이는 윤 동문에게 “엄마, 동생 또 낳고 집에 오래 있으면 안 돼?”하고 물었다고 한다. 동생을 더 봐도 된다고 할 정도로 엄마를 원하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해왔다고. 윤 동문은 그 날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바로 프리랜서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어린이집에서 매일 울며 돌아오던 아이는 눈에 띄게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여름은 프리랜서에게는 방학이라고 할 정도로 일이 없다. 따라서 수입도 일정치 않은 편이다. 윤 동문은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빈 시간을 채웠다.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책을 내는 일은 아마 없었겠죠?”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커졌다. 회사는 누군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 동문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또 은근하게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일을 놓아버리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어져요.” 그녀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고 하긴 어렵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금이 좋다고 말한다.
머리로 아는 의학 지식과 실제 경험은 그 깊이 차이가 상당하다.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아 무작정 병원으로 내달리기도 했고, 아이가 갑작스런 경련을 일으켜 응급실에서 거의 울다시피 한 적도 있죠.” 윤 동문은 직접 아이들을 키우며 겪었던 이런저런 응급상황과 그 대처법을 책에 담아냈다. 많은 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엄마들을 위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책이다. “사실 실제 생활에서 해열제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열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윤 동문은 복잡한 성분명과 그 작용과정 대신 이렇게 설명한다. “‘부루펜’과 ‘맥시부펜’은 사촌지간이에요. 그래서 동시에 쓰면 같은 길을 둘이 싸우다 가게 되기 때문에 길이 미어터져요. 몸에 무리가 오고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이렇듯 어떤 언어로 풀어내는지에 따라 상대의 이해 여부가 달라진다.

행복한 메디컬라이터

윤 동문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 글을 쓰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또 강연을 한다. 윤 동문은 현재 ‘행복한 Medical writer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이 블로그는 2012년 전문분야 우수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 시작한 계기는 단순히 “나 살아있어요.”하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블로그에는 메디컬라이터 소개, 일상 글, 약사 직업에 대한 이야기 등을 올린다.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사회약학처럼, 제약 산업을 둘러싼 우리 사회 전반을 인문학·경제학적으로 보기도 한다. 요즘은 약대를 다니거나 약대를 들어오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논문을 제대로 읽는 방법도 포스팅하고 있다. 의학 자료를 무조건 맹신하지 않고 제대로 봐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녀는 직접 학교로 나가 건강관리, 약 사용·보관법, 흡연예방교육과 음주 조절법들을 강의하기도 한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약물오남용예방 교육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지금 하는 일이 몸에 딱 맞는 맞춤옷 같다는 윤 동문의 목표는 이렇게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향후에도 계속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윤 동문은 후배들에게도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인생의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그 행복을 찾는 길에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웃음소리 중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필명으로 쓰고 있다는 ‘쿠쿠쿠’처럼 그녀의 웃음은 참 행복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