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크리스마스이브. 어린이들을 설레게 하는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일종의 잔혹 동화다. 산타클로스가 ‘착한’ 어린이 3억 8,000만 명에게 선물을 주려면 초당 822.6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그러려면 썰매는 초당 1,050km의 비현실적인 속도로 달려야 한다. 동화 속 산타클로스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택배기사들도 살인적인 일정에 시달린다. <성대신문> 사회부는 택배기사 김형민(가명, 47) 씨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지난 11일 새벽 6시 20분, 서대문구의 한 설렁탕집 앞에서 택배기사 김형민 씨를 만났다. 꽁지머리에 야구모자를 쓴 형민 씨의 귀에는 검은색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담배 펴요?” 형민 씨가 기자에게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나 담배 진짜 많이 피는데, 아들 녀석이 담배 연기를 싫어해서…”
우리는 난지도를 지나 서울 외곽의 물류센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김 씨는 00택배의 한 영업소에 속했다. ‘속했다’고 표현했지만 택배기사들은 엄연히 말해 개인사업자다. 택배기사들은 개인소유의 지입차량을 갖고 운수회사와 계약을 맺는다(지입제). 차량구매 및 유지비용, 펜·가위 같은 개인 물품, 식대 등은 모두 기사 개인이 부담한다. 이런 형태의 간접고용은 직원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줄여주고 비용을 절감한다. 1997년도 이전만 하더라도 택배업계에서는 회사가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직영제가 일반적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직영제로 고용하던 택배기사들을 지입제로 돌리기 시작했다.
“조카도 커피 한잔 해야지?” 김 씨의 ‘사수’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 씨는 오늘 영업소에서 기자를 자신의 조카로 소개했다. 기사들이 종이컵 커피를 홀짝이며 하나둘 택배물품이 지나다닐 롤러 주변으로 차를 댔다. 오전 7시, 롤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11톤 대형트럭에서 택배물품들이 내려졌다. 롤러의 시작점에서 직원 두 명이 분주하게 상·하차작업을 시작했다. 다른 직원은 롤러 위를 지나가는 물품들에 바코드를 찍어댔다. 바코드에 찍힌 정보는 회사의 전산망을 통해 고객들에게 전달된다.
롤러의 하류 지점에는 롤러들이 T자 형태로 붙어있었다. 택배기사들이 모여 자신의 담당 구역에 갈 택배들을 빠르게 집어냈다. 그런데 택배에 붙은 주소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상자에 붙은 글자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고 도로명주소와 지명주소가 섞여 있어 더욱 헷갈렸다. “어이, 조카 이거 좀 읽어 봐봐” 사수 옆의 ‘만수 형’이 롤러 건너편에서 택배를 던지며 외쳤다. ‘Daehyun-dong’이라 적혀있었다. “대현동이요!” 외치며 택배를 되던졌다. “어? 벌써 택배를 막 던지면 안 돼. 한 2, 3개월 차쯤 돼야 택배를 던질 수 있어~” 덩치 큰 만수 형이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며 헤헤 웃었다. 경력 5년의 만수 형은 영업소의 에이스로 통한다. 뭐든 모르는 게 없는 만수 형은 택배기사들의 해결사다. 현장에 있던 기사들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부분이 1년 안팎이었다.

6배 넘게 성장한 택배시장,
기사들의 몫은 그대로

오전 7시에 시작한 분류작업은 오전 10시 20분이 돼서야 끝났다. 분류작업은 무임금 노동이다. 회사는 기사들의 분류작업에 대해 따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지난 7월 한 대형택배회사의 택배기사들은 “배송업무가 주 업무인 택배기사들에게 사측이 분류작업을 강요하고 있다”며 “무임금노동, 공짜노동을 즉각 철폐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측은 “분류작업도 택배 작업의 일환”이라며 무임금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분류작업이 끝나고 차에 오르자 김 씨는 “조금 출출하지?” 하면서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생수와 참치 김밥을 꺼냈다. 김 씨가 이동하면서 간편히 하나씩 집어먹을 수 있게 매일 밤 아내가 도시락을 싸준다고 한다.
오늘 김 씨가 배송해야 할 택배는 142개다. “하루에 평균 170개 정도 하는 것 같아, 베테랑들은 하루에 300개씩도 해. 나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적은 편이야” 여기에 집화물품 15개가 추가된다. 택배기사는 배송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보내는 이로부터 물품을 받는 집화업무를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의 집화는 대부분 반품이다. 집화수수료는 배송수수료와 같은 800원이다.
택배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배송수수료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택배시장은 2001년 매출규모 6,500억 원에서 2014년 4조 원대로 6배 넘게 성장했다. 파이가 커지자 많은 기업이 택배사업에 뛰어들어 가격경쟁을 벌였다. 택배 평균단가는 2001년 3,190원에서 2009년 2,524원으로 하락한 후 2,500원대에 머물러 있다. 택배기사들이 받는 배송수수료는 1,000원에서 800원대로 줄어들었다. 택배기사들의 월평균 순수입은 2013년 215만 원이었다(<국내외 물류산업통계>, 대한상공회의소, 2014).

 

 
   

“택배는 시간이 생명이야”


김 씨는 아직 신입이라 영업소에서 담당 구역으로 아파트 단지만 배정해줬다. 아파트는 일반 주택들보다 주소를 찾기 쉬운 대신에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김 씨는 5층 정도는 그냥 뛰어다닌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택배는 시간이 생명이야” 김 씨는 조수석 앞 글로브박스에서 노트를 꺼냈다. 노트에는 분류작업이 끝난 시각, 각 아파트에서 배송업무를 시작하고 끝낸 시각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아파트는 택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이날 방문한 아파트 단지 5곳 중 2곳의 주차장 입구엔 높이 제한이 걸려있어 탑차, 화물차들의 진입이 힘들었다. 기사들은 단지 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손수레에 택배물품을 실어 직접 동 앞까지 운반해야 했다.
오후 12시 15분, A 아파트 단지의 배송작업이 끝났다. 11시 반에 시작했으니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어제는 한 시간 넘게 걸렸는데 오늘은 빨리 끝났네” 김 씨가 숨을 돌리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김 씨는 2010년부터 5년간 족발집을 운영했다. 연남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던 김 씨는 지난 6월 ‘메르스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고 결국 가게를 정리했다. 그 후 김 씨는 한 달 넘게 놀며 집에서 빈둥거렸다고 한다. “그때는 술도 많이 마시고 집 근처 하천을 운동 삼아 자주 걸었어”
김 씨가 스마트폰의 ‘만보계’ 앱을 켰다. “그때 당시에는 하루에 5천 걸음만 걸어도 많이 걷는 거였는데 지금은 매일 1만7천 걸음을 훌쩍 넘겨” 택배기사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김 씨의 몸무게는 5kg 정도 줄었다. 불편한 곳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오른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처음에 무거운 짐을 들고 내리고 하다 보니까 손목을 조금 다친 적이 있어. 근데 별거 아니야”
오후 12시 20분, B아파트에 도착했다. 낮에는 집에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김 씨는 어떤 물건은 현관 앞에 놓고 어떤 물건은 경비실에 맡겼다. “비싸고 좀 좋아 보이는 물건은 경비실에 맡기고, 너무 무겁고 좀 싸 보이는 물건은 그냥 현관 앞에 놓고 말지” 배송과정에서 분실, 손상되는 물품의 책임은 모두 택배기사에게 있다. 하루에 200개를 배송하고 배송수수료로 16만 원을 벌어도 10만 원짜리 물품 하나를 실수로 잃어버리면 기사의 하루 수입은 6만 원으로 줄어든다.

"그렇지... 우리 아들 효자지"

택배기사는 아파트에서 ‘을’ 중의 ‘을’이다. 김 씨가 경비실에 택배를 맡기자 한 경비원은 “아, 낮에는 사람이 없다니까. 왜 자꾸 낮에 오는 거야?”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어떤 경비원은 “장부에 기록할 때 글씨 좀 진하게 써”라며 타박을 주기도 했다. 김 씨는 “저 사람들은 택배수령 말고도 업무가 많으니까 이것저것 신경 쓰기 귀찮은 거지”라며 웃어넘겼다.
오후 1시가 되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웬만큼’ 내리면 기사들은 그냥 비를 맞고 배송을 계속한다. 그런데 비가 ‘심하게’ 내리면 배송업무를 중단한다. 종이로 된 상자가 운송과정에서 쉽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그날 하루는 그냥 날리는 거지. 근데 일반택배는 상관없는데 해산물 같은 거는 하루만 지나도 잘 썩으니까 골치 아프지”
B아파트를 돌고 C아파트를 한창 돌던 오후 3시, 상가 근처에 차를 댄 김 씨가 화장실로 바삐 향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처음 누네” 김 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후 3시 21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김 씨가 힘들어서인지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이제 슬슬 힘들다. 근데 1차 고비만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해져” C아파트의 배송을 마치고 D아파트로 향하는 길, 김 씨와 가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아들 녀석은 중학교 때 2년 정도 해외 유학을 갔어. 그래서 영어는 아주 잘해. 근데 혼자서 외국 생활을 하느라 많이 힘들었는지 유학 갔다 와서 정신과 치료를 1년 정도 받았어. 그래도 지금은 00대의 바이오 학과에서 전액장학금을 받고 있지” 김 씨가 말했다. “효자네요” 기자가 말하자 “그렇지. 우리 아들, 효자지” 하면서 김 씨가 환하게 웃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무거운 장바구니가 집으로

오후 6시, D아파트의 배송업무를 마치고 E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기자는 김 씨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메모만 했을 뿐인데도 이때쯤에는 버티기 힘들어졌다. 허기가 지고 다리의 근육이 점점 굳어지는 걸 느꼈다. 한 동의 배송업무를 마치고 다른 동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잠시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는데 30초 정도 되는 그 짧은 시간이 무척 달콤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엉덩이를 떼고 내리는 일이 매번 괴로웠다.
오후 6시 32분, 복도식 아파트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김 씨가 잠시 바깥 풍경을 내다봤다. “와, 안에서 뭐 하는지 다 보이네. 신기하다” 김 씨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제각기 환히 밝혀진 아파트 베란다 창들이 마치 텔레비전처럼 다양한 인간의 삶을 방영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 거실에 엎드리고 누워 숙제하는 꼬마, 강아지와 놀아주는 할아버지. 몰개성한 사각형의 공간들이 저마다의 일상으로 이채롭게 빛나고 있었다.
저녁 7시,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하고 마감에 가까운 김 씨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손수레에 물건을 내리는 김 씨의 옆으로 한 대형마트의 트럭이 서고 그 옆을 쌩하니 세탁소의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대형마트의 트럭에 적힌 홍보문구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무거운 장바구니가 집으로’
아파트 안에 집약된 개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택배기사들은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다. 지난 한 해 동안 16억 2,320만 개의 물품을 30,910명의 택배기사들이 배송·집화했다.
김 씨의 배송업무는 오후 8시 10분에 종료됐다. 1만 6,076걸음(13.55km)을 걸으며 총 157개의 물품을 배송·집화했다. 배송업무를 11시 30분에 시작했으니 김 씨는 3.3분에 하나꼴로 물건을 배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