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성경 기자 (stellask@skkuw.com)

“딸아, 난 네가 제일 부러워. 넌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잖아. 엄마는 엄마아빠가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야.” 인터뷰 중에 한 친구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득 이때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그 날 엄마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전화기가 할아버지 손이라도 되는 듯 그것만 붙잡고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그 날 엄마의 하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며 나는 이렇게 종종 나 자신과 마주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감정들과 마주했다. 처음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문화를 기획으로 가져왔을 땐 그냥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나를 돌아본다는 그런 귀찮고 거대한 사명감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거운 고민은 결국엔 나를 덮쳐왔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7면을 취재했던 그 날은 참 더웠다. 잠은 한 3시간쯤 잤나? 인터뷰 거절은 일상이라는 얘기에 마음 졸이며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었다.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그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눈을 빛냈고, 말을 계속해서 듣기 위해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사실 힘들었다. 난 별로 밝은 사람도 친절한 사람도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사람으로는 보여야 했다. ‘과연 내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 짜증 나는 불안함 또한 계속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줬을 때 의문은 사라졌다. ‘이거 될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친구, 나의 연인 그리고 나의 가족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어야 아름답다. 그렇기에 난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그런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을 그대로 내비치는 사람의 이야기는 늘 부담스러웠고 그 페이스에 맞춰 내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어떤 사람을 만나도 또 어떤 취재를 할 때에도 100%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나를 드러내는 건 위험하고 불편한 일이니까. 그래서 나를 믿고 이야기를 해준 모든 이가 참 고맙다. 그들과 10분의 대화로 비로소 이제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쿨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에서야 드디어 난 기자가 됐다.

이성경 기자 stellask@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