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ja2307@skkuw.com)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는 참가자가 복면을 쓴 채로 노래를 부르고, 판정단은 오직 그의 목소리만으로 평가한다. 평론가들은 이 프로의 인기를 두고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회적 바람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실의 편견과 차별은 채용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입사 지원서의 △사진 △연령 △가족관계 △신체사항 등의 항목이 지원자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곧 불합리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뭐하시노
많은 기업들은 채용 시 지원자에게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을 요구해왔고, 그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성대신문>이 국내 사기업 170개의 2015년 공채 입사 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각 항목이 포함된 지원서는 △학력 166개 △생년월일 또는 연령 154개 △사진 145개 △가족관계 103개 △종교 46개 △혼인 여부 53개 △신체사항 58개였다. 가족관계 항목 중에서는 88개가 가족 구성원의 구체적인 직업을, 61개가 최종 학력 또는 출신교를 물었다. 가족과의 동거여부를 물은 지원서도 77개에 달했다. 신체사항에서 가장 많이 포함된 항목은 신장으로 49개의 기업이 지원자에게 이 정보를 요구했으며, △체중 45개 △시력 41개 △혈액형 38개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분석 대상 중 15개의 기업은 사내외 지인, 추천인 등의 항목을 통해 노골적으로 지원자의 인맥을 조사했다. 주거 상황(자택/전세/월세 등) 혹은 가족 월수입을 물은 기업도 9개였다. 15개 기업은 지원자의 주량과 흡연 여부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했으며, 33개는 호주제가 폐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지원자의 본적을 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사 대상 공기업과 공공기관 30곳중 3곳의 입사 지원서에서만 가족관계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단 한 곳만이 신체사항으로 색맹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주)오뚜기’의 인사담당자는 “이와 같은 항목은 채용 시 단순 참고 자료이며, 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향후 입사 지원서를 개선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취업 준비생들은 현 입사 지원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올해 6월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이력서에서 가장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항목’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484명의 취업 준비생 중 55.4%가 뽑은 키·몸무게가 1위를 차지했다. 가족사항(52.3%)과 취미·특기(19.4%)는 그 뒤를 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업무와 상관없는 항목’이기 때문이었다.

외모도 스펙이 되는 시대
외모 지상주의는 취업난과 결합하여 ‘페이스펙(Face + Spe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얼굴이 하나의 스펙이 된다는 뜻이다.
올해 7월,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에는 “성형이 취업 7종 세트로 자리 잡은 시대. 기업들은 어떤 얼굴을 선호할까요?”라는 문구가 포함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함께 제시된 이미지의 출처는 한 성형외과였다. 주된 내용은 “업종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고쳐라”, “좋은 인상을 주는 얼굴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와 같은 성형 경험자의 조언이었다. 취업 성형을 조장한다는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게시물을 삭제했으며, “게시물은 청년 기자단이 작성한 것으로, 본래 취지는 성형보다 자연스럽고 선한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연스럽고 선한 인상이 중요하다’라는 표현 또한 외모를 우선시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이력서 사진과 채용 여부를 크게 연관지었다. 올해 4월 잡코리아가 취업 준비생 7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7.8%가 이력서 사진이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력서 사진이 첫인상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75.4%로 압도적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유료 메이크업을 받거나 여러 번 재촬영을 한 경우도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었다.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도 비슷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인사담당자 539명을 설문한 결과, 75.7%가 채용 시 지원자의 이력서 사진을 평가한다고 답했다.

없어도 가능해요
이력서에 사진 부착을 요구하는 사례는 국제적으로 드물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이력서에 △이름 △전화번호 △주소 정도만 기재하며, 사진 제출 금지가 의무화되어있다. 직무 능력과 관련 없는 차별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2014년 프랑스 역시 8년의 시범 기간을 거쳐 50명 이상 직원을 가진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익명 이력서(CV anonyme)를 법제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지원자는 차별을 야기하는 어떠한 개인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인 타일러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한국에서 인턴십에 지원했을 때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라고 해서 충격적이었다”며 “미국은 사진을 붙이면 차별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은 2012년 이력서에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보도 자료를 통해 “사진 부착 관행은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