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먼 타지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고향 어머니가 차려주는 집 밥을 떠올린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직장인은 한 그릇 국밥으로 피곤을 달랜다. 한나절 소일하던 어르신은 국밥 안주에 소주 한 병으로 근심걱정을 잊는다.
 국밥이 이토록 고마운 존재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일까. 더 많은 사람에게 한 그릇 위로를 전하기 위해 국밥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 있다. 그것도 우리 가까이에. 종로구 낙원동에 자리한 이천 원 콩나물국밥 ‘부자촌’과 동숭동에 위치한 천 원 설렁탕 ‘구관원이물비’. 두 곳을 방문해 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안상훈 기자 tkd0181@

낙원동 '부자촌' 이야기 

낙원동‘에 ‘부자촌’이라니. 이름 참 잘 지었다. 2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전영길 씨. 그가 2008년 국제금융위기 당시 이천 원 하던 짜장면 가격을 천 원으로 내린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예전에 식자재 납품하는 일을 해서 그럴 때일수록 싸게 떼 오는 법을 알아.”
탑골공원 동쪽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는 부자촌. 그래서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다. 오랜 세월 장사를 하다 보니 전영길 씨는 단골들과 친분이 두텁다. 그는 “면을 굉장히 좋아하시던 101살 할아버지가 있었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히 냉면을 좋아하셨어. 어르신은 우리 집 냉면이 유독 맛있고 시원하다며 다른 집 냉면은 입에도 안 댄다고 하시더라고.” 할아버지는 아들뻘인 부자촌의 다른 손님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돌아가셨는지 언제부턴가 오시지 않더라”며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두껍아 안녕-.” 할아버지가 소주를 마실 때 잔에 입을 마주치며 하는 말이다. 그래야 술에 취하지 않는다고. 그는 일어나서 한 병, 아침·점심·저녁에 한 병, 자기 전에 한 병, 하루에 소주 다섯 병을 마신다.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렇게 작은 잔에 마셔서는 기별도 안 와.” 그는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따르더니 한입에 털어 넣었다.
“여기가 내 집이여, 내 집.” 그에게 부자촌은 각별하다. 10여 년째 단골이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부자촌에 온다는 할아버지, 자연스레 주인과도 친해졌다. “오빠, 나 술 다 떨어졌어” 하며 주인을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 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었다.
“더 가져가라니까.” 할아버지는 자신이 주문한 녹두전을 나눠주기도 했다. 몇 개를 가져가느냐를 두고 한참을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여덟 조각의 녹두전을 할아버지와 네 개씩 나눠 가졌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녹두전과 기자가 주문한 수육을 바꿔 먹자고 말해도 한사코 사양했다.

“1년 반 전에 친구들이랑 와서 먹었어. 가격이 이렇게 싼데 맛이 아주 괜찮더라고. 그 후로 간간이 들러.” 혼자 국밥을 들고 있었던 정석채 씨는 부자촌에선 ‘신참 단골’이다. 그는 “이미 친구들과 근처에서 한 잔하고 왔다”며 술은 사양했다.
정 씨는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아침 다섯 개 신문을 보는 그는 자신이 ‘신문 경영’을 한다고 말했다. 국밥을 먹으며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던 정 씨. 그는 “언론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기사 써라”고 말하고 부자촌을 나섰다.

전영길 씨가 손님 할아버지의 수염을 당기며 장난을 치자 할아버지가 정색을 했다.

 

동숭동 '구관원이물비' 이야기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엔 화려한 대학로에 어울리지 않는 가게가 있다. 간판에 ‘1000원 설렁탕’이 조그맣게 적혀 있다.

 

구관원이물비 가게 내부,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얼핏 보면 신당 같기도 하다. 게다가 식탁도 네 개뿐이라 평범한 식당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구관원이물비에 가면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있다. “연극인들은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대요. 밥 잘 챙겨먹고 공연 열심히 하라고 천 원에 설렁탕을 팔고 있어요.” 가격은 천 원이지만 설렁탕에 들어가는 정성은 천만 원이다. 직접 만든 인삼주와 한우 사골을 이용해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육수의 양이 제한적이라 하루에 아주 많은 양을 팔진 못한다.
설렁탕 자랑이 끝나자 아주머니는 ‘어고집밥’ 운동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 고향 집 밥’의 줄인 말. 아주머니는 “고향 멀리서 공부하고 일하는 손님들이 여기서 고향의 어머니가 해준 집 밥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운동이에요”라며 손님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주문하기 참 까다롭다. 아주머니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으면 아주머니가 수상한 기계를 들고 다가온다. 손바닥 체온을 재기 위함이다. 35도. “열이 많네. 오늘처럼 더운 날은 2~3도 올라가곤 해.” 손바닥 온도에 따라 손님마다 다른 밥이 나온다.
설렁탕을 먹는 방법은 더 독특하다. 먼저 뜨거운 돌솥에 밥이 나오면 바닥의 누룽지만 남겨두고 밥은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다. 누룽지만 남은 솥엔 함께 나온 고명을 넣는다. 그러고 나면 아주머니가 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돌솥에 따라주신다. 솥이 굉장히 뜨거워서 몇 분만 지나면 설렁탕이 보글보글 끓는다.

 

설렁탕을 주문한 후, 아주머니는 음식을 기다리며 출출할 손님을 위해 막걸리와 전을 제공한다.

“여기 진짜 천 원이에요? 먹어도 돼요?” 가게에 들어선 한 무리의 여대생들이 신기해하며 묻는다. 그녀들은 인터넷에서 맛집을 찾다가 신기한 곳이 있어 들렀다.  가게 분위기에 압도돼 가게 앞에 와서도 들어오길 한참 망설였단다. “‘결혼도 하고’ 테이블에 앉자. 우리도 결혼해야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자리에 앉아 손바닥 온도를 재는 기계를 한참 가지고 놀던 그녀들. 메뉴판을 정독하곤 설렁탕 두 그릇을 시켰다.
천 원 설렁탕 가게라고 어르신들만 찾는 건 아니다. 방송과 신문에 소개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늘었다. 연극을 보러 왔다가 들렀다는 학생들은 단돈 천 원에 따뜻한 정을 느끼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