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마음이 무겁다. 아주 싼 가격에 음식을 팔며 주위에 온정을 전하는 따뜻한 모습을 잔뜩 카메라에 담아 오리라 마음먹었다. 동숭동까진 좋았다. 낙원동이 문제였다. 늦은 밤 8시. 탑골공원을 지나며 잔뜩 긴장했다. 공원 입구에 이불을 깔고 취침 준비를 하는 노숙인. 고주망태가 돼서 전봇대에 기대 뻗은 아저씨.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탑골공원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얼마 안 가 ‘부자촌’ 식당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조용한 실내 분위기에 조금 안도했다. 사장님께 취재를 부탁하고 가게 구석구석을 찍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사진 찍으면 안 돼’ 하고 호통을 쳤다. 덥수룩한 수염에 허름한 옷차림. 겁부터 났다. ‘손님들 사진도 찍어야 하고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데 어쩌지.’
용기 내서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말 한마디 나누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물쭈물하다가 한 마디 건넸다. “여기 자주 오세요?” 오히려 그는 대단히 반겼다. “여기가 내 집이잖어.” 자신이 생겼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고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언제부터 오셨나. 가장 좋아하시는 메뉴는 뭔가. 유치한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술도 한 잔 받았다. 물론 소주잔에 말이다. 할아버지가 날 비웃었다. “거기다가 소주를 마셔? 기별도 안 오겠다.” 그는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이어 콜라를 따더니 소주에 콜라를 섞었다. 그는 “항상 이 콜라를 섞어 먹어”라며 내게도 콜라를 권했다. 소주에 할아버지가 따라 준 콜라를 섞고는 건배를 했다.
“두껍아, 안녕-.” 할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전에 잔에 입을 맞추곤 두꺼비에게 인사를 했다. 소주병에 그려진 바로 그 두꺼비 말이다. 그렇게 두꺼비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 한참을 웃었다. 할아버지도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주문한 ‘녹두전’도 나눠주셨다. 하나를 집었더니 더 가져가하신다. 두 개를 집었더니 더 가져가하신다. 결국, 여덟 조각의 녹두전을 내가 넷 할아버지가 넷 나눠 먹었다. 그의 겉이 아닌 안에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자, 그는 반갑다며 손을 덥석 잡았다. ‘서울엔 언제 오셨나’ 물어봤다. 돌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아픈 곳을 콕 집었어.” 굉장히 미안했다. 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이 조금 더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사적인 얘기를 하나둘씩 꺼냈다. 곁에 오신 사장님이 한마디 했다. “얘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
찍어온 할아버지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한 장 골랐다. 그를 유쾌하고 정 많은 사람으로 묘사한 사진 설명을 썼다. 괴로웠다. 이유 모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부자촌’에서만큼은 할아버지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오늘 밤에도 할아버지는 ‘부자촌’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