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건호 기자 (rheegh95@skkuw.com)

혈액형이 성격과 정말로 관계가 있을까?’, ‘프로야구 구단의 원정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은 무엇일까?’라는 엉뚱한 질문에 대한 답을 ‘물리’에서 찾는 학문이 있다. 바로 통계물리학이다. 이 학문은 세상을 단순화해 바라봄으로써 그 속에 있는 보편적인 패턴과 단순한 질서를 밝혀낸다. 최근 우리 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는 통계물리학을 이용해 1차원 윷놀이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밝혀냈다. 그를 만나 이번 연구와 통계물리학에 대해 들어봤다.

▲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한영준 기자 han0young@

통계물리학은 어떤 학문인지 소개해달라.
통계물리학이란 물리학의 한 분야로 많은 입자로 구성된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통계물리학자들은 특수성에서 총체성을, 즉 구체적인 시스템 하나하나를 넘어 그들을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질서를 파악한다. 통계물리학이 중요한 이유는 미시적인 정보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정보들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계물리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분야가 상태변화다. 물이 수증기가 될 때 물 분자 하나를 봐서는 상태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물 분자가 수천 개, 수만 개가 모여 있다면 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설명함으로써 거시적인 현상, 즉 상태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과학적인 현상 이외에도 사람들을 원자로, 세상을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의 특징을 단순화해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최근 통계물리학 연구의 일환으로 ‘1차원 윷놀이에서 이기는 방법’을 발표했다.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있는가.
통계역학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윷을 한 번 던졌을 때 말이 갈 수 있는 거리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하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다. 과제를 하며 이 주제에 관심이 생긴 한 학우가 이 연구를 심화시켜 한국 물리학회 학부생 연구발표에 제출하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을 이용한 윷가락 하나가 배를 보일 확률 그래프 /Ⓒ김범준 교수 제공
 
이번 연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선 윷놀이를 계산의 편의를 위해 단순하게 만들었다. 보통 쓰는 윷판에서 바깥쪽 네모 테두리 길만 따라간다고 생각했고, 한 편마다 말을 두 개씩만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윷놀이를 할 때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승률이 더 높은지 알아봤다. 우선 윷놀이 판은 먼저 윷가락 하나가 평평한 모양이 보일 확률(P)을 먼저 구했다. 보통 개나 걸이 자주 나오고, 모는 윷보다 드물게, 또 윷이 도보다 드물게 나오므로 P=3/5이 적당함을 알았다. 이후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을 이용해 약 10억 번 게임을 반복했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이란 단순한 일을 컴퓨터를 이용해 수없이 반복해 확률을 구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실험 결과는 실제 윷놀이보다 단순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 계산을 통해 업기와 잡기 두 전략 사이에 의미 있는 승률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과를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자면 윷놀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면 다른 편보다 먼저 게임을 시작하고, 업기와 잡기 중 고민될 때는 일단 상대편 말을 잡아야 한다. 참고로 이 연구 결과는 박혜진, 심하성, 조향현 박사와 함께 한국 물리학회지에 논문으로도 게재됐다.
 
통계물리학자들은 ‘단발적 연구가 학문적 깊이를 쌓을 수 있나?’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학문적 깊이를 쌓긴 어렵다. 하지만 평생 연구할 큰 주제를 선택해 연구하는 과학자도 필요하고, 재밌으면서도 생활에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주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통계물리학자들이 항상 단발적인 연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소개되는 괴짜다운 연구들은 대학원생들과 함께하는 연구의 1/3밖에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 통계물리학의 현황과 전망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통계물리학을 연구하는 교수님은 많지 않지만 통계물리학의 수준은 국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둔 ‘복잡계 네트워크(Complex Network)’ 분야에서는 △KAIST 정하웅 교수 △고려대 고광일 교수 △서울대 강병남 교수 △인하대 이덕선 교수 등이 활약하고 있다. 우리 학교엔 나와 에너지과학과 Petter Holme 교수가 있다. 통계물리학은 10년 안에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통계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은 최근 연구의 불모지로 여기던 비평형상태에서 시스템의 특성을 발견하고 있다. 또한 적용 범위가 넓은 특성 때문에 통계물리학을 적용한 새로운 학문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사회통계물리학이나 경제통계물리학은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 방향은 어떠한가.
최근에는 사회통계물리학에 큰 관심이 있다. 현재 대통령 선거결과에 드러나는 지역감정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또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자 이름의 유행에 대해서 연구 중이다. 신기하게도 어떤 이름을 아무도 안 쓰면 다른 사람들도 안 쓴다. 반면에 이름이 너무 많아도 사람들은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이를 수학적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