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느덧 총학생회 선거철이다. 학도호국단이라는 관제(官制) 학생회가 막을 내리고 명실상부 학생의 자발적 선거로 구성된 총학생회가 출범한 것이 1980년대 초이다. 그 시절의 총학은 정의와 자주를 위해 투쟁했던 학생운동의 본부였다. 운동권 학생이 아니면 총학의 지도부가 될 수도 없었고, 총학의 정치활동에 대해 일반 학생들 역시 암묵적으로 동의까진 해주었다. 90년대를 지나고, 특히 2000년대에 이르러 총학의 주 업무는 자치와 복지로 바뀌었다. 지금의 총학생회는 학생활동을 기획ㆍ운용하고, 학생복지를 감시ㆍ제고하며,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적ㆍ기능적 방안들을 고안ㆍ제기한다. 예전의 학생회나 지금의 학생회나, 지도부는 항상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헌신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동기의 순수함 못지않게 운용의 내용이나 방향도 중요하다. 근래의 학생회 활동을 보면 일정 정도 획일성의 만연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매 기마다 표준화되고 일반화된 학생회 활동 항목의 리스트와 매뉴얼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우선 선거전이 그렇다. 벽보와 구호와 율동은 기성 정치 선거의 축소판이다. 얼굴 알리기와 번호 알리기에 초점을 맞춘 선거운동은 학내 선거권자에 60년대 식 어르신을 대입한 듯싶다. 복수의 입후보자들이 대운동장이나 새천년홀에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천여 명 가까운 선거권자들이 운집해 경청하고 질문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 정책토론회를 만들지 않고, 또 설령 만든다 해도 학생들이 운집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선배 총학과 미래 총학을 꿈꾸는 이들이 져야 한다. 캔커피 하나 준다고 학생들이 투표하진 않는다. 피선거권자들이 한편에서만 고안해낸 얘기를 듣자고 학생들이 선거에 임하진 않을 것이다. 투표율이 낮다면, 그 일차적 책임은 선거에 나선 자들에게 귀속된다. “당신의 관심과 참여만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라는 구호 자체가 책임의 회피이자 전가이고 동기의 실종이다. 선거 이슈를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진심으로, 충심으로 학생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여기는 학교이니, 학생다운 진지함이 묻어나는 선거전을 보고 싶다. 이러한 선거를 통해 탄생할 총학생회에 대해 몇 가지를 거론하고자 한다. 선거전 뿐 아니라 총학의 중요한 활동 항목 가운데 하나인 축제 역시 곁눈질 해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무대와 앰프와 노래와 천막과 술과 파전의 광경이 눈에 너무 넓게 들어온다. 게다가 호객의 장면이라도 있게 되면 축제는 그 자체로 절망이다. 참여 인원도 너무 극소수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이력의 삶을 살아온 다양한 명사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릴레이 강연도 좋지 않은가. 학생들의 현안과 관심이 온통 취업이라면 웬만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초빙해 팁을 들려주는 취업소스전람회를 개최해 보는 것은 어떤가. 과나 동아리 단위 혹은 마음이 맞는 학우들끼리 조직된 팀들의 유치한 학예회 발표 역시 소소하게 즐겁지 않을까. 삼청동과 안국동과 창경궁과 대학로를 돌아 달리는 마라톤 대회는 또 어떠한가. 축제가 왜 놀고 마시고 소리 지르는 것뿐일까, 발표ㆍ전시ㆍ공연ㆍ경연ㆍ시연도 무척이나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내 행사답지 않은가. 축제를 기획하는 총학은 학생을 고객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할 만한 상품을 제시해야 한다. 인사캠으로만 보자면 학교가 너무 시끄럽다. 밤낮 없이 너무 시끄럽다. 캠퍼스 크기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ㆍ차량ㆍ악기ㆍ방송의 소리가 너무 잦고 높으며, 플래카드ㆍ안내문ㆍ공고문이 너무 넘친다. 건물 내에서든 밖에서든 한적함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 어지럽게 꿈틀대고 교차하는 선의 흐름 속에서 한가함을 느끼기 어렵다. 총학은 동선의 정리와 소리의 소거와 시야의 정화를 위해 지혜를 창출해주기 바란다. 차량의 일방통행이나 전기오토바이만의 통행허가도 고려할 수 있다. 학내에 별도의 점심시간이 없어진지도 오래다. 수업은 종일 빈 시간 없이 진행된다. 수업에 장애가 되는 교내방송 자제도 고려 바란다. 우리도 플래카드 없는 학교가 됐으면 진정 좋겠다. 도시미관을 위해 점점 확산되는 옥외광고정리시스템을 벤치마킹해보는 것은 어떤가. 교내의 다양한 시청각적 공해문제를 학교본부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함께 효과적인 방안을 도모해낸다면 좀 더 안정적이고 차분한 교정, 좀 더 진지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하는 곳이다. 그리고 학교는 학습자와 교수자 모두 발전과 향상을 위해 매진하는 곳이다. 인간적이긴 하나 비학교적인 해방ㆍ발산ㆍ표출은 개별적으로 학교 밖에서 해결하고 도모하면 좋겠다. 선거든 축제든 교정의 풍경이든, 이 모두는 ‘학교’를 넘어서도 안 되고 ‘학교’로부터 떨어져서도 안 된다. 총학이 학생활동의 리스트와 매뉴얼을 새롭게 제정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