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룡(건축도시디자인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 초에 시작한 역사 드라마 ‘정도전’을 자주 본다. 고려말 두 인물, 그러나 나중에 이념이 달라 반목한 정몽주鄭夢周와 정도전鄭道傳은 고려 왕조의 성균관 출신. 정도전은 쿠데타 후에 수도를 개경開京에서 한양漢陽으로 옮기기를 단행하고 실제로 새로운 왕조의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변방을 지키던 이성계李成桂장군을 도와 일등 개국공신이 되면서 새 도시의 궁궐과 성벽, 사대문과 사소문, 종묘와 사직 등 중요한 왕조시설을 배치하고 경복궁의 근정전, 강녕전, 숭례문, 흥인지문 등 주요 궁궐전각과 성문의 이름까지 손수 지었다. 공자와 대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묘文廟와 고려에 이어 조선의 국가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을 한양(서울)에 지은 때가 개국 이듬해인 1391년이다. 성균관의 다른 이름은 반궁泮宮이고 성균관입구를 둘러 반수泮水인 시내가 흐르고 건널 다리 반교泮橋가 있었다. 그리고 서쪽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지점에도 다른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명륜동과 혜화동 골짜기로 내려온 이 물은 지금의 대학로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렀다. 성균관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바로 명륜당 앞마당이다.
우리 학교 영화과에서 연출을 가르치는 정재은 감독의 작업, 공전의 관심을 끌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2012)의 주인공은 건축가-석좌초빙교수 정기용鄭奇溶(1946-2011). 암 투병 중에도 매우 큰 규모의 건축전시회 ‘감응의 건축’을 여는 등 초인적인 말년을 살았다.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 살면서 이곳을 유독 좋아하던 그는 성균관의 정당인 명륜당明倫堂 앞마당을 ‘자기 집 영역’이라 자주 호언했다.
5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은행나무 밑에서 신문을 펼치는 순간 내가 맛 본 행복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향기로운 아침, 명륜당 양쪽에 길게 늘어선 기숙사 동무와 서무(동재와 서재), 그리고 남쪽의 대성전과 낮은 담장사이에 펼쳐진 넓은 마당의 고요함 위로 아침빛이 숨 쉰다. 그리고 새로 나온 푸른 은행잎들이 하늘 높이 뻗어가며 오래된, 아주 오래된 세월의 깊은 주름이 팬 나무의 몸통이 살아있음을 말한다. 땅 위로 드러난 굵은 뿌리 위로 새 나무가 수직으로 곧게 뻗어 막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11월이 지나 마당 가득히 노란 은행잎이 떨어질 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제정신을 잃는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계절마다 선사하는 이벤트다. 오래된 나무는 그 자신이 살아있는 신화다. 모든 것이 변하는 도시에서 이렇게 500년 넘게 자란 나무와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을 갖고 있음은 나를 명륜동에 매어두는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이야기’ 중 ‘나의 집은 백만 평’, 현실문화)
그의 유별난 명륜동 예찬에 감응해 나도 날씨가 좋을 때면 정문에서 버스가 올라오는 아스팔트길을 택하지 않고 그 아름드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서있는 성균관의 텅 빈 마당을 지나 국제관 앞 비천당丕闡堂 앞을 지나 학교 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이지만 옛날 성균관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서재마루에 앉아 해가 지는 오후 하늘과 키 큰 나무를 바라보는 고요함을 즐기기도 한다. 서울의 한 가운데서 누리는 축복이라 여기면서.
학기 초봄, 그와 공동수업으로 진행하던 때의 새내기들을 생각하며 명륜당 앞마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겨울이 지나간 둥지에서 여린 잎들이 뻗어 나오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을 보며 삶을 생각한다. 이 세상의 어느 곳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그는 이제 그 마당에 없다.
학교 앞을 차지하고 있던 상가 건물을 들어내고 쉼터를 조성하는 정비공사 중이다. 반교泮橋가 있던 곳이 지금의 정문자리이다. 정문 앞길에서 보면 성균관의 모습도 잘 인지되지 않고 문묘文廟대성전大成殿삼문三門[=신문神門] 턱 앞으로 도로가 나 있어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의 느낌도 약하다. 이번 정비 공사를 계기로 대학과 종로구청, 문화재청이 협의하여 차로를 좀 더 남쪽으로 돌리고 정문도 지금보다 안쪽으로 옮기면 성균관과 오래된 나무가 이루는 풍경을 통해 이곳의 시간성과 역사성이 드러날 것이다.

 

 

 

 

 

 

 ▲조성룡(건축도시디자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