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옷을 입은 픽토그램의 재발견

기자명 배공민 기자 (rhdals234@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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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학교로 오던 길을 생각해보자.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보이는 비상구 표시, 건널목에는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파란불의 신호등, 우리 학교 경영관의 ‘금연’ 표시부터 올림픽 기호 픽토그램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픽토그램은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픽토그램들이 언제 처음 세상에 나타나게 된 걸까?

그림에 정보를 담다
 픽토그램의 시작은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학자였던 오토 노이라트와 그의 부인 마리 라이더마이스터의 아이소타이프(Isotype)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각 자료를 만들고 싶었던 노이라트는 그림문자 부호를 한데 모았다. 이후 그의 부인이 아이소타이프 연구소를 세워 전 세계에 보급하려는 노력을 계속한 끝에 픽토그램이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각종 매체에 활발히 쓰이게 됐다. 직관적으로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많은 요즘, 픽토그램은 이런 정보를 담는 그릇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픽토그램에 감성을 더하다!
정보전달의 목적을 충실히 따르던 픽토그램 계에 이단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픽토그램의 단순성과 직관성에 예술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의 사명을 위해 군더더기를 모두 벗고 어쩌면 너무 차가워져 버린 회색빛 픽토그램. 여기에 그들은 감성을 불어넣는다. 그렇다고 ‘절제’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절제와 간결성, 직관성이라는 밑바탕 위에 예술적인 색감과 감성을 덧칠하는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픽토그램 예술가인 줄리안 오피는 몇 가지  선과 색으로 구성한 풍경화로 그의 세계를 정의하더니 △점 △선 △면으로 단순화된 인물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픽토그램이 그의 색감과 생각을 얻는 순간, 인물화에서는 힘이 뿜어져 나오고 숨겨져 있던 개성과 발랄함이 드러난다. 절제된 픽토그램에 색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드러나는 개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대한민국의 감성을 일깨운 픽토그래퍼
 우리나라에서는 함영훈 픽토그래퍼가 본격적으로 픽토그램 예술을 시작한 최초의 예술가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래픽 픽토그램’이다. 픽토그램의 규칙적인 조형 형태를 그래픽으로 패턴화해서 그 안에 은유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현재 부산에서 전시되고 있는 ‘감정의 상징화’ 전에서 그는 감성의 똑같은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상생활에서 약속된 기호를 사용하며 무의식적으로 감정까지 표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디지털로 표현된 색색의 수많은 점은 거대한 하트를 이루고 관객은 자연스레 이것을 ‘사랑’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왜 항상 하트는 ‘사랑’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기호는 팔레트 위의 색색의 물감처럼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 함 작가는 ‘하트’라는 기호로 형용할 수 있는 무수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한다.
절제의 미덕에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얹는 매력적인 조합. 이를 몸소 느껴보려는 픽토그램을 향한 예술가들의  고백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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