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김영한 교수(경제학과)
우리가 살아가고 직면하는 하루하루는, 과거 그 어떤 선배와 선조들에 의해서도 경험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순간이며 역사다. 알고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날마다 새롭고 생경한 나날이며, 또 우리는 날마다 엄청난 도박에 가까운 선택과 결단들을 내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맞이하는 나날들은 매우 익숙한 것이며 개미 쳇바퀴 도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은, 오늘이 과거와 같고 미래가 오늘과 같으리라는 엄청난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1초 전, 그리고 하루 전의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임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 속 우리의 좌표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생각해봐도 더욱 자명해진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날마다 새롭고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나날들인 가운데,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무더위 속에서 성대신문사 기자가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땡볕에 이글거리는 교정을 가로지르며 교수님들 연구실을 샅샅이 누빈 듯한 성대신문사 기자가 명함과 원고의뢰서 한 장을 건냈다. 돌몰목 원고를 써줄 수 있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무슨 영문인지 알겠다고 순순히 승낙하고야 말았다. 먼저 네이버를 찾아봤다. ‘돌물목’은 ‘소용돌이치는 물길’이란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이 곧 돌물목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온갖 재난들도, 또 전대미문의 취업전쟁으로 과거 일제치하 때보다 젊은이들이 더 꿈을 꾸기 힘든 이 처음 겪는 청년실업 사태도, 모두 처음 겪어보는 돌물목이다. 이 더위에, 이 막막한 방학 중의 땡볕에, 이 처음 겪어보는 고난의 시기에 대처해보려 무거운 가방들을 짊어지고 학교 언덕길을 오르는 청년들을 보며 나는 짠한 마음과 함께 다음과 같은 연유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원시 공산사회이래 최근의 후기자본주의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의 돌물목에서 생산력과 기술발전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회적 생산관계는 숱한 사회적 통증과 혼란을 초래하다가, 결국 새로운 사회체제로 혁명적 변신을 거듭해왔다. 이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공부한 역사책에서 터득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청년들이 겪고 있는 돌물목은 무엇인가. 전대미문의 과학기술과 생산기술의 혁신을 바탕으로 모두가 신분상승 혹은 안락한 삶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더욱 씨가 말라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꿀 수 있는 꿈이란 것도 포장된 체념을 넘어서기가 힘든 상황이다. 도대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돌물목은 왜 발생했으며, 그 끝은 없는 것인가?
최근 청년들의 꿈을 앗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은 유럽의 청년실업에 비하면 차라리 양호한 처지라고 통계는 말한다. 즉 세계노동기구(ILO)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이 2012년 9.6%인 반면, 이탈리아는 34%, 스페인은 52.4%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청년실업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선진국을 포함해 극심한 청년실업을 겪고 있는 남유럽국가들과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경제주체들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최선을 다하는 분야에서는 새로운 혁신적 가치를 창출해 그 창출된 새로운 가치로부터 이윤을 획득하고자 하는 올바른 이윤추구모델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즉 미국 및 영국을 중심으로 소위 후기자본주의산업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금융산업은, 해당 산업 본연의 역할대로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의 혁신산업을 발굴해 자본을 공급하지 않았다. 금융산업 분야에서는 자산가격 조작을 통해 시세차익 극대화를 이끌어내는, 소위 첨단금융상품 개발에 몰두해 전대미문의 이윤을 창출했다. 그 결과 경제구조 전반에 걸쳐 거품이 형성되고 자산가격이 왜곡됐다. 거품붕괴에 의한 금융위기 및 실물경제위기가 반복돼 경제 불안정성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이런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투기적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청년들은, 그 고통의 무게만큼이나 사명도 크다. 즉 투기적 자산거품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적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본래적 의미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회복하는 것도 우리 청년들에게 달려있다. 투기적 거래동기를 원천적으로 억제하는 투기적 자산거래에 대한 거래세와 투기적 이윤을 환수하는 자산소득세 등의 법적 장치와 함께, 혹세무민의 투기적 자산거래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혁신의 꿈을 접지 않는 청년들의 투지에 자본주의의 미래가 달려있다. 그래서 오늘도 땡볕에 학교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청년들에게 나는 격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