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하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얼마 전 아이가 갑자기 수술을 하는 바람에 한동안 병실에 갇혀 지낸 적이 있다. 환자들의 우울에 물들어 있다가 오랜만에 교정에 돌아와 보니 어느새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 화려한 순간이 지극히 짧다는 것만으로도 아쉬운데 항상 이 꽃비가 내리는 기간에 중간고사가 치러지니 학생들의 고충이 어떠할지 짐작할 만하다. 나의 학창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학과도서실 창으로 흩날려 들어오는 꽃잎을 애써 외면하며 시험공부에 몰두해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삼삼오오 꽃그늘을 찾아나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곤 했었다. 여전히 이 아름다운 시절에 시험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우리 학생들을 보며 당시에 느꼈던 고통을 떠올려보지만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일탈을 권유하기도 쉽지 않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엔 바야흐로 신록이 한창이다. 봄의 진정한 면모는 잠시 피었다가 지고 마는 꽃에게서가 아니라 힘찬 생명력으로 뻗어나가는 신록에게서 찾아야 마땅할 듯하다. 눈이 시린 초록의 변주에 정신을 팔다가 문득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이라는 수필이 떠올랐다. 신록의 그늘 아래서 모든 티끌을 벗어던지고 평화를 느낀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신록에게서 선생이 느꼈던 무념무상의 희열보다는 움트는 생명의 아우성을 맛보고 싶다. 처음엔 수줍게 여린 이파리로 고개를 내밀지만 하루가 다르게 녹음을 뿜어내는 5월의 신록에는 젊음의 생기가 담겨 있다.
흔히 신록을 청춘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청춘의 학생들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신록의 시기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안타깝다. 다양한 사회적 압박 속에 여유를 잃고 너무 일찍 시들어가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김난도 교수의 인생 시계를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생 80년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하면 1년은 18분에 해당하고, 그러한 환산법에 따르면 20대의 학생들은 하루 중 오전 6시에서 7시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 시각이야말로 새로운 하루를 위해 활기찬 발걸음을 내딛는 때가 아닌가. 수많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인생의 아침을 살고 있는 20대의 활동적인 모습은 신록이 번창하는 5월의 화창함과 닮아있다. 청춘의 흥성거림을 예찬하는 나는 수업 직전 왁자지껄 화사한 소란을 쏟아내고 있는 학생들의 발랄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신록이 겨우내 응축된 에너지를 품고 돋아나는 것처럼 젊음의 생기발랄함 속에도 진지하고 간절한 소망들이 깃들어 있기를 희망한다. 반드시 젊어서 청춘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가슴 속에 희망의 신록을 싹틔울 수 있어야 진정한 청춘이 아닐까? 우리 학생들이 마음속에 저마다 신록의 가지들을 하나씩 키워나가길 기대하며 천상병 시인의 시 한편으로 마무리를 삼는다.

오월의 신록(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 녹색은 눈에도 좋고 / 상쾌하다 / 젊은 날이 새롭다 / 육십 두 살 된 나는 / 그래도 신록이 좋다 /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 나는 늙었지만 / 신록은 청춘이다 /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 이지하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