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힐링, 멘토, 꿈. 최근에 주가를 올리고 있는 책들이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책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지만, 이 책들이 무슨 내용인지는 읽지 않았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넌 행복해질 수 있어!”,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넌 성공할 수 있어!” 어떤 면접에서는 꿈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한다. 꿈조차 스펙이 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넌 괜찮아!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어!” 라니. 희망고문일 뿐이다. 멘토들은 그 뒤에 올 실패와 좌절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자신을 향하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난 실패자야.” 그때 다시 멘토들이 말할 거다. “넌 괜찮아! 꿈을 가져!” 좌절과 힐링의 무한 반복. 끔찍하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편리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태울 수 있는 위험한 도구다. 그들이 당신에게 가져다준 위안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당신이 그 위안에 도취되는 순간 그것은 당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옆에는 판도라가 있다. 그녀는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 있다.
나는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던 사과대 학회 학술제에 한국정치학회 학술국장으로 참여했다. 한국정치학회에서는 학술제 개별 기획으로 한국 탈정치화의 역사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학생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뤘다. 내가 이러한 발제를 쓴 이유는, 간단하게는 한국정치학회라는 학회를 알리는 것에서부터, 더 복잡하게는 새내기들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쥐여주기 위함이었다. 최근의 새내기들은 더 이상 학회 같은 학술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술’은 무겁고, 불편하고, 내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과대에서는 새터를 통해 새내기들이 학회를 접하고 비교적 학회생활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작년에는 절반 이상이 중간에 학회를 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새내기들에게 우리는 불편해 보이는 ‘판도라의 상자’를 손에 들고 있는 판도라였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학회들도 ‘학술’의 비중을 점차 줄여나갔다.
사과대 학회 중 한국정치학회는 그나마 ‘학술’을 지켜온 학회 중 하나지만, 결국 작년에 우리 학회에서도 세미나의 비중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은 나였다. 단순하게 사람을 만나고 계절 따라 MT와 소풍을 가는 것은 어느 공동체에 가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담론이 사라진 자리를 힐링, 멘토, 꿈들이 차지하고 있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내가 왜 아픈지 설명해주지 않는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학회들마저 무겁고 불편하고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는 이유로 학술을 버린다면, 도대체 대학생들은 어디로 가서 내가 아파야 하는 구조적 이유를 찾고, 의문을 품고, 고민할 수 있단 말인가?
판도라의 상자에는 불편한 온갖 것들이 들어있지만, 동시에 그 밑바닥에는 희망이 숨어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보고 난 후에야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한국정치학회에 들어올 새내기들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쥐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왜 더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지, 당신이 왜 ‘투표하지 않는 놈’이 돼야 했는지에 대한 발제를 썼다. 상자를 열지 말지는 그 아이들의 선택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자를 여는 순간, 당신의 삶이 불편해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이 그 고민의 밑바닥에서 힐링을 넘어서는 ‘진짜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