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기자명 정재욱 기자 (wodnr1725@skkuw.com)

지난 19일 한적한 오후, 서울 근교의 실내 체험 동물원에 방문했다. 폐업한 건물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에어간판만이 아직 이곳이 동물원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중무휴이고 시간제한도 없는 이 동물원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체험을 통해 동물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사육사로 보이는 여성과 사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분주해 보였다. 결제를 위해 계산대에 서자, 사장은 “죄송한데 어디서 오셨어요? 그냥 놀러 오신 거에요?”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기자가 동물을 좋아해서 보러왔다고 하자 뒤늦게 “보통 아기들이랑 오기 때문에 여쭤봤어요”라며 머쓱 웃었다.

동물원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해바라기 씨와 새 모이를 받고 사육사의 별도 안내와 동행 없이 먹이 주기 체험이 시작됐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커튼을 걷자, 익숙지 않은 야생 동물의 냄새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동요의 선율이 내부에서 진동했다. 울음소리가 개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프레리도그가 입구 앞에서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케이지가 놓여있는 책상에는 동물들이 아이들의 손가락과 먹이를 구분하지 못하니 부모들의 각별한 유의를 당부하는 내용의 ‘손 조심’ 경고가 있었다.

채 썬 당근을 구매하려고 다시 입구로 돌아갔다. 사육사는 당근을 건네며 “당근 스티커가 붙어있는 사육장에 한해 자유롭게 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체별로 어느 정도의 당근을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당근이 가득 든 컵을 들고 통로를 지나가자 네 마리의 바위너구리들은 유리벽에 앞발을 올리고 기자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기자는 작은 녀석에게 먹이를 주려고 있는 당근을 아낌없이 넣었으나 끝내 당근 하나를 먹이지 못했다. 오히려 덩치 큰 녀석들끼리 살벌한 먹이 쟁탈전을 벌였고, 당근은 먹이 구멍 앞의 자리를 독차지한 덩치 큰 녀석들의 전유물이었다. 몸집이 작은 새끼도 당근을 먹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큰 녀석들이 이빨로 공격하며 쫓아내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먹이를 뺏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광경을 아이들의 생태교육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기자와 동행했던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무리에서 서열 높은 개체가 먹이를 독점하는 행위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먹이 주기 체험의 맹점이다”고 전했다. 

 
 










패럿 사육장 전경사진. 왼쪽 사진은 패럿 사육장 내부 확대. 아래 사진은 당근을 먹고 있는 바위너구리.

먹이 쟁탈 위한 몸부림, 관심 없는 동물원
체험관 뒤편 곳곳 배설물 수북해

바위너구리 사육장의 뒤편에서는 치워지지 않은 배설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육장 천장이 막혀있어 사육장 실내를 환기할 수 있는 시설도 전무했다. 백열전구가 하얀빛을 내뿜는 패럿의 사육장에는 작은 반려동물용 침낭, 식수를 담은 빈 플라스틱 용기만이 타일 바닥에 놓여있었다. 온도에 민감한 뱀을 전시한 공간에서 온도를 측정하는 기구는 망가져 방치됐다. 야행성이라고 소개한 미어캣 두 마리는 대낮부터 우리 안에 있는 부서진 바구니와 작은 바위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포유류 먹이 주기 체험이 끝나고 조류 체험관의 입구에 들어섰다. 안내문에는 새들이 떨어진 모이를 먹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해 새를 밟는 경우가 있다며 조심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입장하기 전 사육사로부터 별도의 안내를 받을 수 없었고 바닥에는 누군가 흘린 새 모이와 비닐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조류 체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나뭇가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새 모이가 들어있는 봉지를 뜯어 손바닥 위에 올리자마자 형형색색의 새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날갯짓을 하는 새들이 한 방향으로 날아오자 적지 않은 위협이 느껴졌다.

전시관을 한 번 둘러보자 여직원이 다가와 “만지기 체험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낮잠을 즐기던 패럿은 관람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는 미어캣도 만지기 체험에서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미어캣이 임신 중이라 만지기 체험이 어렵지만, 먹이 주기 체험은 할 수 있어요”라며 사육사는 미어캣이 입구 쪽으로 계속해서 나오려고 하자 손으로 미어캣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이를 저지했다.

다음으로 닭 만지기 체험을 위해 사육사는 문을 열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닭들은 소리를 내며 사육사를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사육사는 한 손으로 막대기를 들어 닭이 가는 길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닭의 꽁지를 쥐며 닭을 우리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만지기 체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옥수수 밭에서 자주 발견돼서 이름 붙여진 콘 스네이크를 소개하면서 “머리와 꼬리 끝만 잡아당기지 않으면 물지 않고 물려도 피 세 방울만 흘리면 돼요”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또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괜찮다며 레드 테일 보아뱀을 어깨에 두른 기자에게 애완용으로 키울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체험이 끝난 후 수도꼭지를 열어 깨끗한 물로 동물을 만진 손을 씻어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동물들의 절규는 마음속에 얼룩져 지워지지 않았다.

사진 | 김아영 기자 kay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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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전시동물의 복지 향상을 위한 입법, 조사활동을 전개하며, 상업적 동물원, 동물체험전, 동물쇼에 반대하는 국내 최초의 전문동물보호단체이다.
◇왈라비=오세아니아 대륙에 주로 분포하는 캥거루과 동물로 외형은 캥거루와 비슷하나 이보다는 조금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