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동헌 기자 (kaaangs10@skkuw.com)

지난달 14일 자유와인권연구소와 애드보켓코리아의 공동주관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보고서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바탕으로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인권위에 따르면 혐오 표현으로 인해 소수자 집단은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는 두려움과 슬픔에 시달리고 각종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권위는 보고서를 통해 혐오 표현을 명문화된 법 규정으로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법제화 노력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혐오 표현 금지법에 반대하는 측은 △혐오 표현에 대한 판단이 피해자의 주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혐오 표현에 대해 반대하는 더 큰 표현들까지 억제하는 과잉금지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가 혐오 표현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란이 있다. 하지만 혐오 표현 자체가 소수자 집단에게 고통을 안기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인권위 보고서의 책임 연구자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이 해악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혐오 표현의 정의에서 적대성의 표출양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혐오 표현의 적대성은 단순한 편견을 전제로 차별, 물리적 폭력 및 집단학살로 이어진다.(그림 혐오 피라미드 참조) 하지만 적대성 표출의 각 단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적대성 표출의 단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여러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기도 한다. 홍 교수는 시간과 순서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혐오 표현의 적대성이 위험하다고 밝혔다. 편견과 같은 낮은 단계에서의 적대성 표현이 어느 계기에 의해서 한순간에 폭력이나 집단학살과 같은 극단적인 적대성 표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단순히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머물던 사회적 적대성이 경제위기나 일자리 부족 문제와 같은 계기와 만나 폭력의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 

홍 교수는 이 때문에 혐오 표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자제하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혐오 표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표출하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에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같은 계기를 통해 편견이 폭력과 집단학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개인의 윤리 규범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감된 규범을 통해 편견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적 저지선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혐오 발언으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대표적인 반추 사례다. 미연방수사국(FBI)의 통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시작한 2015년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증오 범죄가 전년에 비해 67% 급증했다.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다인종, 다민족으로 구성된 ‘자유’의 국가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경제위기가 회복되지 않고 일자리 문제로 인해 반히스패닉, 반아시아, 반이슬람의 감정이 고조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혐오 표현 발언은 반다문화 감정에 불을 지폈고 2014~16년 사이 폭력이나 소요 사태와 같은 혐오 표현의 공개적인 표출이 급증하게 되었다. 지난달 30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아파트 수영장에서 백인 남성이 흑인과 히스패닉을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를 한 사건이 일어나는 한편 지난 2월에는 미국 캔자스주에서 백인 남성이 인도인 2명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피의자는 현장에서 총을 쏘기 전 “내 나라에서 나가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홍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으로 혐오 표현의 개념정의를 전략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위가 정의한 혐오 표현은 ‘소수자 집단에게 적대성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경우’이지만, 혐오 표현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세계적으로 확립된 기준은 없으며 학자마다, 연구기관마다 다른 개념 범위를 상정하고 있다. 사회적인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데는 혐오 표현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컨대 '김 여사'나 '김치녀'와 같은 발언에 대해 혐오 표현이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예민하다' '긁어 부스럼 일으킨다' 등 논쟁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혐오 표현의 자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경미한 표현에 대해 모두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할까? 홍 교수는 이에 대해 혐오 표현의 정의는 넓게 하되, 법으로 처벌하는 표현의 범위는 좁게 하는 이원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경미한 표현일지라도 상, 하의 권력 및 위계 관계가 뚜렷한 경우에 행해지면 법적 제재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외모에 대한 발언을 한 경우 공개적인 석상이라 할지라도 법적 제재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직장에서의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하는 경우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형사처벌까지는 사회적으로 무리가 있으므로 차별 구제와 같은 법적 제재가 요구된다. 혐오 표현의 또 다른 법적 제재 대상은 차별과 혐오를 다른 사람에게 부추김으로써 확산시키려고 하는 명백한 의도가 있는 경우이다. 이 같은 경우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차별 구제를 넘어서 형사처벌과 같은 법적 제재가 요구된다. 유럽 사회에서는 이미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심각한 역사적 전례가 있어 이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의 법적 제재에 대해서도 다원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혐오 표현 금지에 대한 논의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